두려움, 회피, 그리고 내면의 감정 지도
요즘 나는 『내면소통』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10여 년간 꾸준히 관심을 갖고 공부해온 나의 관점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하며 큰 기쁨을 느꼈다. 이 책은 인간의 고통과 괴로움의 원인, 그리고 해결책을 아주 명확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지금껏 파편처럼 흩어져 있던 지식들이 하나의 구조로 잘 정리되어 있다. 오랜만에 700페이지가 넘는 책을 단숨에 읽어내렸다.
나는 새로운 지식을 접할 때마다 늘 이렇게 자문한다.
“이 지식은 내게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나는 이 지식으로 어떤 행동을 해야 할까?”
그런 변화와 행동이 없다면, 그 지식은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번 책을 통해 생각해 본 주제는, 바로 ‘현실을 회피하고 싶을 때 우리는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가’이다.
우리는 왜 일을 미루고 싶을까?
눈앞에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는데도 자꾸 그 일이 싫어지고 회피하고 싶을 때가 있다. 시작조차 어려울 때가 있다. 심한 경우 무기력증에 빠져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기도 한다. 왜 그럴까?
그 일 자체가 괴롭기 때문이다. 왜 괴로운가? 감정이 그렇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왜 그런 감정이 올라오는가? 그 일이 싫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싫을까? 우리는 보통 여기서 생각을 멈춘다. 그냥 싫다고.
하지만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보자.
‘싫다’는 감정은 뇌의 진화적 구조에서 비롯된다. 원시시대에는 뱀이나 맹수 같은 위험 요소를 빠르게 피하는 것이 생존에 중요했다. 그래서 ‘싫다’, ‘두렵다’, ‘불쾌하다’는 감정을 빠르게 감지하는 뇌가 살아남았다. 이 감정을 빨리 인지하고 회피한 개체들이 생존한 것이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는 뱀이나 맹수는 없지만, 마감일이 있는 과제나 처리해야 할 복잡한 일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우리 뇌는 그런 도전적인 일들을 과거의 맹수처럼 인식한다. 그러니 자연스레 회피 반응이 나타난다. 일을 시작하지 않는 것이 덜 괴롭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렇게 회피만 반복하다 보면 해결은 더 멀어진다는 것이다.
뇌는 ‘예측’과 ‘감각’의 불일치에서 고통을 만든다
이 책은 감정과 고통의 근원을, ‘뇌가 예측하는 외부 세계’와 ‘감각을 통해 실제로 들어오는 세계’의 차이에서 찾는다.
쉽게 말해, 우리 뇌는 항상 ‘이 상황에서는 이런 감각이 들어와야 해’라고 기대한다. 그런데 그 기대가 어긋나면, 고통이 발생한다. 물고기가 물속에 있기를 기대하다가 물 밖으로 끌려나오면, 예상치 못한 감각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것처럼.
사람 역시 복잡한 스토리와 모델을 뇌 속에 가지고 있다. 가령 ‘주식을 사면 돈을 벌 것이다’라는 기대가 있다면, 뇌는 ‘주식이 오르는 장면’을 시각적으로 감지하길 원한다. 그런데 주식이 떨어지고 있다는 뉴스가 들어오면? 뇌는 고통을 느낀다. 예측이 어긋났기 때문이다. 예측이 어긋난다는 것은 내 예측시스템이 믿을만하지 못하다는 증거다. 뇌는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할거라는 과장된 절망감에 빠진다. 뇌는 불확실성을 싫어한다. 그것도 매우 끔직하게 싫어한다. 마치 뱀을 만난 것처럼 두렵고 고통스럽다. 그래서 우리는 그 상황에서 도망치고 싶어진다.
이 원리는 투자뿐 아니라, 공부, 직장 생활, 인간관계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기대가 어긋날 때마다 우리는 뱀 소굴에 떨어진 것처럼 괴로움을 느낀다. 때로는 그 고통을 덜기 위해, 스스로를 ‘무능한 실패자’로 규정하기까지 한다. "나는 원래 이런 인생을 살 운명이다." 그렇게라도 뇌는 이야기를 정리하고 싶어한다. 고통을 줄이기 위해, 자기비하와 무기력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무능이라도 잘 '예측'해서 불확실성을 줄이려 시도한다.
기대를 낮추고, 예측 가능한 세계로 돌아가기
그렇다면 해답은 무엇일까?
바로 과도한 기대를 버리고, 예측 가능한 작은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 투자는 “잃을 수도 있다”는 전제로 접근하고,
- 공부는 “지식을 쌓는 것 자체가 목적”으로 여기며,
- 직장은 “이 불황에 일할 곳이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자세를 갖는 것이다.
뇌는 예측이 맞아떨어질 때 안정을 느낀다. 따라서 예측 가능한 세계를 작게 설정하면 고통도 줄어든다.
‘내 하루’, ‘내가 직접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보자.
이를테면, 아침에 일어나 이 닦기, 산책하기, 메일 확인하기 같은 아주 단순한 루틴 말이다. 이 작은 루틴이 성공적으로 반복되면, 뇌는 성취감을 느낀다.
예민한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출구가 생긴다.
나는 왜 이렇게 예민한가?
우리는 종종 외부 탓을 한다.
“전쟁 때문에 주식이 떨어졌어.”
“시험 망친 건 내가 멍청해서야.”
“상사가 성격이 너무 나빠.”
하지만 더 깊은 원인은 외부가 아니라 나의 예민한 뇌 구조에 있다.
정확히는, 편도체가 비대해졌기 때문이다.
편도체는 감정의 나침반이다. 위험인가 기회인가, 도망쳐야 할까 맞서야 할까를 빠르게 판단한다. 편도체가 지나치게 활성화되면, 이성과 통제를 담당하는 전전두엽의 기능은 약해지고, 회피·분노 같은 자동 반응으로 흐르게 된다.
이 나침반이 잘못된 방향을 자꾸 가리키면, 삶은 늘 긴장 속에 휘둘린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단기적으로는 이렇게 해보자.
- 심호흡을 한다.
- 산책을 나간다.
- 나 자신에게 “괜찮아”라고 따뜻하게 말해준다.
- 운동으로 감정의 에너지를 순환시킨다.
장기적으로 '편안전활' (편도체안정화, 전전두엽활성화) 한다.
- 편도체의 활동을 줄인다. (감정 알아채기, 내면아이 감정 한풀어주기)
- 폭넓은 독서와 다양한 경험을 통해 전전두엽의 기능을 강화한다.
- 꾸준한 명상, 일기쓰기, 감정 인식 훈련을 통해 이성의 회로를 활성화시킨다.
그리고 스스로를 ‘쓰레기’라고 규정하려는 충동이 들 때마다 이렇게 말해보자.
“내 뇌가 이렇게 느끼도록 진화했을 뿐, 내가 잘못된 건 아니야.”
결론적으로, 우리는 외부의 자극(으로부터 형성되는 무의식적 고통)을 통제할 수 없다.
하지만 뇌가 그것을 해석하는 방식은 훈련할 수 있다.
그리고 희망적이게도 이 훈련으로 '내'가 '나의 뇌구조'를 바꿀 수 있다.
의식적 훈련으로 무의식을 개조할 수 있다는 말이다.
예민함은 잘만 다듬으면 가장 섬세한 감각의 무기가 될 수 있다. 그 무기를 나 자신을 찌르는 데 쓰지 말고,
이해와 공감, 자기 위로의 도구로 사용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