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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달에서 발을 떼자

멈추면 보이는 것들
멈추고자 집착하면 움직임이 더 커진다.
생각을 멈추어야 실상이 보인다.

뭐 이런 아리송한 말들이 많다.
쳇바퀴를 돌리는 다람쥐의 예를 들긴 했지만 뭔가 부족하다.

언덕길을 내려오는 자전거를 생각하니 이해가 쉽다.

자전거가 있다. 이 자전거는 휠과 페달이 직결되어 있다.
자전거가 언덕을 내려오고 있다. 우리의 인생이다.
자전거는 내려오고 있으므로 그냥 놔둬도 잘 내려온다.

우리는 발은 페달위에 있다. 프리휠이 아니기 때문에 자전거의 속도에 맞춰 페달이 회전하고 우리의 발도 페달과 함께 회전하고 있다.

발에서 힘을 빼도 자전거는 잘 굴러간다.
너무 느리면 살짝살짝만 리듬에 맞춰 잘 굴려주면 된다.

하지만 언덕이 심하면 구르면 안된다. 자전거가 폭주하기 때문이다.
언덕경사가 너무 심하면 페달에서 발을 떼야 한다.

이것이 멈춘다는 것의 의미이다. 자전거를 멈추는 것이 아니라 페달구르기를 멈추는 것이고, 너무 빨라서 힘들면 발을 페달위에 놓는 것을 멈추는 것, 발을 떼는 것이다.

나는 페달위에서 발을 떼는 것은 고사하고, 페달을 전심전력으로 돌려왔다.
일단 페달구르기를 멈춰라. 그리고 가능하면 페달에서 발을 떼라.

페달을 굴리지 않아도 뭇삶은 알아서 잘 굴러간다는 것이 연기의 진리요 가르침이다. 이것은 99.9 퍼센트의 외부적 환경에 위해 내 인생이 끌려간다는 것이다. 내 노력으로 인생전체를 바꾸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것을 모르고 힘과 노력으로 인생을 바꿔보겠다고 덤벼드는 천둥벌거숭이가 자아이다. 무지에서 탄생한 자아가 자만스러울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있다.

열심히 노력하지만 왠지 뒤쳐진다. 실익이 없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가만히 놔둬도 그렇게 갈 것이었다. 괜히 용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힘만 들었다.

여기서 뭔가를 더 잘해보겠다고 , 수행에 달려들었고, 생각을 멈추기 위해 애쓴다.
근본적으로 왜 생각을 멈추려하는가? 생각을 멈추면 좋다고 하니, 이것을 통해 인생 전체의 고민을 날려줄 더 좋은 한방을 기대하는 것 아닌가?

또 뻘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말이 필요없다.
페달에서 발을 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