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이 진화하며 여러조직이 생겨나고, 조직간에 협업하며 생명을 이어나간다. 다양한 조직이 서로간의 전기신호를 통한 길항작용에 의해 과잉하지도 않게 부족한지도 않게 나서며 자신의 기능을 별도로 수행해 나가면서도 전체적으로 균형을 맞추며 나아간다. 심장의 박동자극은 간뇌에서 펄스를 보낸다. 시각과 청각의 신호들은 시상하부와 편도체를 거쳐 호르몬을 배출해 심장 펄스의 주기에 반영된다. 시청각 신호들은 또 작은뇌와 연결되어 도망쳐라는 신호를 다리 근육에 보낸다. 원시생명체에서는 이렇게 조직간에 직접적인 전기신호를 주고받는 것으로 충분했다.
하지만 고등동물로 진화하면서 각 개체간의 직접적 연결을 통한 길항작용보다, 통합적 관점에서의 조정이 개체에 유리한 상황이 전개되었다. 이것은 기능 조직 전체에 연결된 중앙부문에서, 각 조직간의 신호를 받아들이고, 통합적 관점에서 그것의 우선순위를 결정해 주는 것이다. 그 주요 기능들은 뇌가 담당하며 뇌는 점점 커져갔다.
이 감각, 생각의 주의 및 반응의 우선순위 결정은 진화된 뇌에서 일어난다. 이 우선순위 결정 기능이 의식이다. 의식은 매 순간에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한가지의 감각(그것이 비접적인 오감의 감각이든, 기억 혹은 상상속에서 나타난 감각이든) 과만 연결된다.
우리의 감정회로는 의식이 매 순간 주로 어느 감각, 생각으로 기울어져 연결되어 있느냐에 따라 패턴화되고 결정된다.
욕망, 두려움의 생각에 많은시간 의식이 연결되어 그 신경망을 강화시킨 것이 현재의 인간의 뇌이다. 그래서 인간은 결핍과 공포 괴로움의 고통을 겪게된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의식은 어느정도 연결될 대상을 선택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호흡을 완전히 참을 수는 없지만, 어느정도 그 주기를 의지로 선택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인간은 의식이 호흡과 연결되어 있지 않을때 호흡은 자동모드로 돌아건다. 하지만 의식을 호흡과 연결시키고 의도하면 그 완급을 조절할 수 있다.
생각도 마찬가지이다. 생각을 의식과 연결시키지 않고 방치해두면 생각은 자동모드로 욕망과 결핍, 발버둥 모드로 돌아간다. 마치 저절로 숨쉬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의식을 생각과 연결시키고, 의도를 내면 생각의 완급을 조절할 수는 있다. (물론 호흡과 마찬가지로 생각을 완전히 끊을 수는 없다. 끊을 필요도 없다. 하지만 조절해서 뇌의 패턴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갓이다.)
이 능력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어느 생각에 집중할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고, 그 연기적 결과로, 내 스스로 성격을 바꾸고,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이것보다 더 큰 기쁜 소식, 복음이 어디에 있을까?
하지만 세상에 좋은것만 있지는 않다 양이 있으면 음이 있는 법.
사람마다 의식과 생각을 연결하고 끊는 능력은 다르다. 역설적이게도 생각이 적은 사람들이 이게 쉽게 된다. 생각과 의식간의 연결에 대해서 관심이 있는 사람은, 생각이 많은 서람들이라 이게 잘 안된다. 이 글을 쓰는 이유도 이 주제에 대한 생각이 의식과 계속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만 쓰고 싶어도 계속 생각이 뇌 속에서 의식의 주의를 끌기 때문에 우선순위에 올라오는 것이다. 이것은 역설이며 아이러니다. 생각을 하면서도 생각을 쳐내야 하는것.
그래서 명상이 필요하다. 필요시 주의를 생각에서 분리시키는 훈련이 명상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