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가장 미워하기 쉬운 대상은 누구일까? 놀랍게도 내 가족이다. 내 곁에 가장 가까이 있는 타인이다. 그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멀리 있는 타인은 내가 잘 알 수가 없기 때문에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가 없다. 나와 감정적 교류를 가지려며 접촉이 있어야 하고, 접촉하기 위해서는 자주 마주쳐야 한다. 그러다 보니 나와 자주 마주치는 가까운 사람들, 예를 들면 가족과 갈등이 많이 생기는 것도 자연스러운 이치다. 그래서 웬수같은 배우자, 자식이라는 말이 나오게 된다. 하지만 그들은 다소 억울하다. 단지 어쩌다보니 보니 내 곁에 있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나를 미워하는 것은 어떨까? 놀랍게도 우리는 나 자신를 가족보다도 더 미워하기 쉽다. 이치는 간단하다. 나는 가족보다도 나와 더욱 자주 마주치기 때문이다. 정확하게는 현재를 감각, 인식하는 식(인식과 이성)과 과거의 업식이 자주 마주치기 때문이다. 모든 인식과정과 생각활동에는 과거의 업식이 관여하기 때문에 의지와 상관없이 만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그것을 알지 못한다. 지금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안 좋은 결과에 대하여 내 과거의 업식을 비난하고 미워한다. 그것이 후회라는 것이다. 하지만 나의 업식도 다소 억울하다. 그 때는 나름 최선을 다한다고 하면서 살아왔을 뿐이다.
타인을 미워하는 사람은 자신도 미워할 확률이 높다. 미움은 습관이기 때문에 상대를 가리지 않는다. 타인을 왜 미워하는가? 그가 나에게 해를 끼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신은 왜 미워하는가? 과거의 바보같은 내가 잘못된 결정을 내려서 현재의 내가 해를 입는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미움이 습관이 되면 남도, 나도, 세상의 모든 일도 다 미워한다. 그러면 몸에서 괴로움의 호르몬이 나오고 나만 괴롭다. 나 스스로를 해치며 괴로움속에서 사는 것은 지옥에서 사는 것이다. 지옥에 떨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이 미움의 습관을 어떻게 고칠것인가? 미움이 대상에게는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도리어 내 자신을 해친다는 것은 머리와 이성으로 알 수 있다. 그래도 막상 미움이 시작되면 제어하기 힘들다. 왜 그럴까? 그것은 미움이 생리작용이기 때문이다. 미움의 습관은 신체에 조각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길이 형성되어 강이 되듯이 몸에 새겨져 있다. 한번 미워할 수록 이 물길은 더욱 깊어지고 뚜렷해 진다. 이 프로세스는 거의 생리작용이기 때문에 이것을 거스른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미움의 물길로 물을 흘려보내면 안된다. 즉 미움이 시작되려는 순간을 인식하고 물을 보내는 것을 멈춰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24시간 깨어있으라는 말의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