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란 때때로 찾아오는 고통을 잘 핸들링해서,
그것에 사로잡혀 있는 시간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여태까지,
아름다운 인상을 받고 더 가까이 하고 싶은데, 멀어서 괴롭다면 그것을 가져 불만을 잠재우려 했다.
혐오스러운 것인데 가까이 있어서 괴롭다면 그것으로부터 도망치려 했다.
상실, 죽음 등 해결 불가능한 숙명적 고통이라면, 다른 것으로 주의를 돌려 회피하려 했다.
고통의 비위를 맞추려 죽도록 노력했다.
하지만 이것은 실패했다. 끝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고통 그 자체를 무기력화 시킨다.
고통이 발생하는 순간, 자동으로 고통을 나와 분리시키며 거리를 두고 떨어져 바라본다.
'결핍감이 활동을 시작하였다. 전기자극으로 발버둥치라고 난리치지만,
사실 이것은 떼쓰는 아이와 같다. 떼쓰는 아이는 그냥 놔두고 가야한다.'
고통을 던지는 자아를 떼쓰는 아이처럼 이해는 해주되, 거리를 두고 무시한다.
이 자아와 거리를 두자는 의식을, 무의식이 될정도까지 정성스레 키우고 있다.
고통의 느낌 바로 뒤에서 이 의식을 환기해내어 고통이 제어되었을 때는 너무 기쁘다.
바로 환기해 내지 못했을 때는, 다소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한다.
이렇게 하면 언젠가는 의식의 개입없이도 이 녀석은 자동적으로 고통을 던지는 자아를 제어할 정도로 성장할 것이다.
매일 힘을 실어주는 연습을 하고 있다. 이 녀석이 부처다.
고통이 자주 찾아와야 내 안의 부처가 얼마나 힘이 커졌는지 실전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고통을 기다리고 있다. 고통을 찾고 있다.
그래서 수행을 열심히 하면 고통이 반갑다.
마치 시험을 잘 대비했다면 시험이 기다려지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