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st me, 2nd me가 있다.
fast me, slow me라고도 불리운다.
무의식적 나, 의식적 나라고도 부를 수 있다.
무엇이라 부르든
생각하는 나 이전에 선행해서 판단하는 무언가가 있다.
아주 어렸을때는 그것의 존재를 몰랐다.
젊을때 어렴풋이 눈치챘지만 도망다녔다.
좀 더 나이가 들어 그것을 혼내고 윽박질렀다.
말 안들으면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했다.
그러다 포기하고, 그것이 원하는대로 해주었다.
어떻게 해도
그것의 욕심과 두려움, 분노와 불안은 잦아들지 않았다.
안식은 영원히 없을 것 같았다.
그러다 부처님의 중도를 알게 되었다.
그 핵심은 '나보다 앞선 나'를 인정하는 것이었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그를 수용하는 것이었다.
무언가를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그'의 자유다.
그는 무엇이든 원할 수 있다.
그는 어느 정도 생각의 통제권도 갖고 있다.
하지만 내 몸의 운동통제권을 가진것은 나다.
그가 이끄는 주의 통제권을 따를지 말지,
그 생각에 계속 머무를지 말지,
그가 원하는 것을 실행으로 옮길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은 현재의 나다.
그를 따르지도, 억누르지도 않는다.
그를 인정하고, 나는 단지 선택한다.
삶의 목표는 그의 느낌으로부터의 자유다.
그것은 삶을 가볍게 만든다.
싫음, 좋음이 느껴져도
그것을 단지 그의 대화로 받아들인다.
그는 어떤 말도 할 자유가 있다.
싫은 느낌이 나는구나. 그는 싫은 느낌을 내는구나
그는 싫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현재의 상황이 싫다고 나에게 밀쳐내 달라고 부탁한다.
이 부탁을 받아들일까 받아들이지 말까?
이런식으로 대처해보면
그가 얼마나 터무니없이 단순하게 요구하는지 알 수 있다.
거의 전부가 전도몽상의 착각속에서
자신에게 해로운 일을 해달라고 요청하는 요구들이다.
받아들여도 좋고 받아들이지 않아도 좋다.
윽박지르지는 마라.
그냥 너의 기분은 이해한다고 해주면 끝이다.
결국에는 늙고 병들고 죽기가 싫다고 하겠지.
그래 알았어. 네 기분 이해해. 많이 힘들겠네.
그걸로 족하다.
뭐 조금 관리를 해줘도 괜챦고..
'과거에 존재했던 현재들'이 그이기에..
억울할 것도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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