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은 의식이 접근할 수 없기에
무의식이다.
그래서 만족을 느끼고 싶다고
의식적으로 아무리 발버둥쳐도,
무의식이 그렇게 못느끼면 결코 얻을 수 없는것.
이 무의식이 자아이다. 발달한 생명체의 전전두엽에 자아는 위치한다.
자아는 남들과 비교하고, 내가 더 가져야 한다는 목표를 갖고 더 노력하라고 발버둥을 촉진하는 양의 되먹임 시스템이다.
자아가 발버둥치는게 아니라, 발버둥을 위하여 자아가 존재한다.
발버둥 치는 행동을 유발하기 위해, 자아가 생겨난 것이다.
이 자아는 언어를 통해 각 개체에 공유된 집단 무의식이다.
언어을 배운다는 것은 이 집단 무의식을 다운로드 받는 것이다.
노력할 수록 자아감은 강화되며, 나의 긴장은 커지며 더 노력할 수 밖에 없다.
여디서 빠져나오는 방법은 자아감보다 더 센 무의식이 자라나도록 하는 수밖에 없다.
이 방법이 명상이다. 사띠다. 108배다.
더 가지려는 자아가 출현하는 것을
저절로 알게될 때까지 의식의 힘으로 지켜본다.
그리고 만족하지 못하는 건 착각이라고 알려준다.
이 노력이 무의식에 각인될 정도로 세지면 자아의 무의식이 동조하고 순해진다.
이때 만족이 찾아온다. 의식이 만족해야지 원한다고 만족을 느끼는 것이 아니다.
자아라는 무의식이 제압되는 '원인'을 제공해야 자아는 힘이 빠진다.
이것이 연기다. 선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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