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기분이 좋아야 행복하다는 고정관념

기분이 좋아야 행복하다는게 사실인가? 혹시 고정관념 아닌가?
같이 일하는 친구에게물어보니 나를 빤히 쳐다본다.
너무나 당연한 걸 왜 물어보냐. 바보아니냐? 하는 표정이다

남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 궁금하니 나는 참 궁금증도 많고 오지랖도 넓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부처님도 이 질문을 하셨을 것 같다. 그러다가 다음과 같은 대답에 도달하셨을 것 같다.
기분좋아야 행복하다는 것은 고정관념, 착각이며, 이 착각이 모든 인간들의 모든 불행의 원인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평생에 한번 이상 아니 하루에 한번 이상은 기분이 나쁠 것이다. 더 많을 수도 있다.
그런데 기분이 나쁜 것은 내 뇌의 구조 때문이다. 뭘 봤을때 기분나쁨을 유발하는 호르몬이 나와서 그런것이다.

이 호르몬과 가슴통증을 괴로움과 연결시킬 이유는 없다.
사실 그대로 보면 호르몬과 전기신호로 인해 가슴에 통증이 있네. 하고 끝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아 통증이 싫어. 이걸 해보자. 저걸 해보자. 어휴 통증이 겨우 사라졌네. 아 근데 다시 통증이 나타났다. 도대체 통증은 왜 자꾸 나타나는거야? 나타나서 죽도록 노력해서 없애면 왜 또 나타나는 거야. 우리는 이렇게 괴로워한다.

위의 문장에서 통증을 기분나쁨이나 짜증으로 바꿔서 읽어보라.

그게 당신의 모습이다. 사춘기에 막 들어선 여자애들의 호르몬 변화로 인한 혼돈과 비슷하다.

기분나쁨과 내 몸의 구조, 호르몬과의 연결고리를 모르기 때문에 괴로운 것이다. 지식적으로는 의학과 과학의 발달로 이 정도는 요새 초등학생들도 다 안다.

기분 좋고 나쁨과 행복의 연결고리를 끊는 것이 수행이다.

부처님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자신의 성찰을 한단계 더 해보셨다. 그런데 나의 이 수행도 기분이 좋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그러면 기분좋음에 또 이끌려서 고통을 만드는 것 아닐까?

그러시고는 최종결론에 도달하셨다.

기분좋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끊는 행위도 처음에는 기분 좋음에 의해 이루어진다. 하지만 그 고정관념이 어느정도 끊어졌으면, 수행으로 발생한 기분좋음에서도 빠져나와라.

똑같은 말을 부처님의 원음으로 표현하면 이렇다.

욕망을 따라가야 행복하다는 고정관념을 끊는 행위도 처음에는 욕망에 의해 이루어진다. 하지만 그 고정관념이 끊어졌으면, 수행에 대한 욕망도 끊어라. 피안의 언덕에 도달했으면 뗏목을 흘려보내라.

그러면 나는 왜 이 글을 쓰면서 자랑질울 하고 우쭐해서 기분좋아 하고 있는가?

아직 기분좋음과 기분나쁨, 좋고 싫음의 파도위에서 뗏목을 타고 놀고 있는 중이다.

당분간은 뗏목을 흘려보내기 싫다.
너무 큰 파도가 아닌 잔잔한 파도에서 물놀이를 즐길것이다.

그런데 인간에게 가장 기분나쁜게 뭘까? 죽는다는 것 아닐까? 인간은 결국 죽는다는 것. 그렇다면 뗏목을 흘려보내면 기분나쁨에 휘둘리지 않게 되어 죽음에도 초연해질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어 해탈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