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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 지향적 삶과 결과 지향적 삶

  고교 시절, 또는 군대에 있을때 우리는 이 중압감이 없으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많은 상상을 하곤 했다. 그 상상 속에는 마음껏 잠을 자보겠다는 것도 포함되어 있고, 술과 담배를 마음껏 즐기겠다는 것도 있을 것이며 애인을 사귀면서 멋진 연애와 사랑을 해보겠다는 계획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억지로 해야 하는 공부가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꿈을 가지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대체로 오래 지속되기 힘들거나, 잘못 길들여지면 자신의 삶을 스스로 통제하기 어려운 나락으로 빠뜨리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오래 지속되기 힘들다는 것은 흔히 ‘쾌락의 역설’이라고 부르는 원리와도 통한다. 사람들은 쾌락에 쉽게 익숙해지고 그렇게 되면 이미 익숙해진 쾌락보다는 더 강한 쾌락을 지속적으로 원하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에 가서는 자신에게 육체적 고통을 가하는 방식의 극단적인 쾌락을 추구하다가 죽음에 이르게 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리들의 삶을 늘 평정심을 추구하거나 정신적인 깨달음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전개할 수는 없다. 인간은 본능을 갖고 있는 존재이고, 이 본능이 요구하는 것을 최소한으로는 충족시켜야만 생존이 가능하다. 이 점을 고려하여 적절한 쾌락을 즐길 수 있는 나름대로의 원칙과 방법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다만 그것이 선을 넘어 중독의 형태를 보이게 된다거나, 일상화되어 게으름과 나태함으로 시간을 낭비하는 선까지는 가지 않도록 노력해야한다.
 
   불안정함과 불투명함 때문에 젊음에는 일정한 어두움과 우울함이 내포될 수밖에는 없다. 그럼에도 젊음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다.  젊음은 다시 올 수 없는 것이라는 점에서 과정 지향적 속성을 내포한다. 과정 지향적이라는 개념은 과정을 그 자체로 존중하면서,  과정 안에서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발전' 의 목표를 발견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삶은 대하는 태도를 크게 둘로 나눈다면 과정 지향적 삶과 결과 지향적 삶으로 구분해볼 수 있다. 후자는 기본적으로 현재의 과정을 목표 달성을 위한 과정, 수단으로 보는 시각이다. 늘 미래에 달성될 수 있는 어떤 목표를 설정해 놓고 현재를 그 과정으로서 간주하는 시각이다. 그에 비해 전자는 삶의 과정 그 자체가 목표라고 보는 시각이다.
 
  우리가 그 중에서 어느 것 하나를 반드시 선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과정 지향적 삶을 추구하면서도 그 안에 일정한 목표를 설정할 수도 있고, 결과 지향적 삶을 추구하면서도 과정 자체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과정지향적 부분의 삶을 선택하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취업과 경쟁이라는 부분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부정적인 의미의 결과 지향적 삶이라고 할수 있다.
 
  우리들의 삶은 과정과 결과를 늘 함께 내포하고 있다. 인생의 어느 시점을 보아도 이 두 요소는 늘 함께 있다. 아동기는 아동기 나름의 의미와 독자성이 있고, 노년기도 노년기 나름의 의미와 독자성이 있다. 다만 그 비중에 있어서 차이를 둘 수 있고, 그런 점에서 청년기는 과정 쪽에 좀 더 가중치를 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청년기는 젊음의 과정 자체에 충실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 과정을 제대로 보내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삶을 살기위한 준비이기도 하다.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지고 심지어 직업 자체도 바뀌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폭 좁은 지식 확대 공부에 힘을 쏟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것을 넘어 위험하다.  그것보다는 '어떻게 자신을 강인한 정신력의 성숙한 인간으로 완성할 것인가'에 대한 궁리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것이 좋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멘탈이 점점 더 세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이러한  즐거움을 느끼고 삶에 대한 자신감과 활력이 커지고 있다면, 그는 젊은 시절을 제대로 보내는 것이다. 
 
지금 할 수 있는것 - 자신과 시대에 대한 정확한 인식 
 
자신을 객관화시켜서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그 바탕 위에서 다양한 사상들을 접하면서 자신의 케이스에 직접 적용시켜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를 통해 자기 나름의 인간의 본질, 더 나아가 삶의 본질을 얻을 수 있다. 아무리 훌륭한 지식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나의 것으로 체화되지 않으면 소용없다. 자신의 몸에서 증명되고 경험된 지식만이 지혜가 된다.
 
  자신의 외모와 배경, 학교 등 외적인 요소와, 무의식적인 습성과 성격 등 내적인 요소를 일단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난 후에 그것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자신을 어떻게 발전시켜 나갈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해보자. 고민의 결과들을 하나씩 실천에 옮겨가며 시도해 보는 것 자체가 미래의 보다 나은 직업과 삶을 위한 준비가 되기도 한다. 그렇게 실천해 나가면서 얻게되는 실패라는 경험이 더욱 중요하다. 이렇게 작은 도전과 작은 실패의 경험이 누적되어 강한 정신력이 배양된다.
직장을 얻는 것도 물론 중요한 것이지만, 그 직장 안에서 진정한 성공을 거두는 일이 더 중요하다. 어느 분야든지 성공을 위해서는 바로 그렇게 '자신에 현재 처지에 대한 정직한 수용' 과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작은 실천들'  을 통해 누적된 '강한 멘탈' 이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된다
 
 직업은 자기 스스로 살아 남아야 하는 인간 사회, 특히 자본주의 사회의 준엄한 명령을 수행하는 하나의 통로다. 직업은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고, 그렇게 본다면 직업은 최소한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벌이의 수단이다. 즉 우리는 직업을 통해서 나와 가족들이 먹고 살 수 있는 돈을 벌어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직업이 구체화되는 시간과 장소가 바로 직장이다.  이렇듯 직업과 직장의 중요한 기능 중의 하나가 돈벌이임에는 틀림없지만, 그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삶이 완성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남들이 말하는 좋은 직장을 구하는 것 또한 능사는 아니다. 그런 직장들은 취업 자체에서 많은 경쟁을 거쳐야 할뿐만 아니라, 취업 이후에도 그 직장 안에서 살아남기 위한 피나는 경쟁을 거쳐야 하고 문제는 누군가는 반드시 패배자가 되어야 한다. 더구나 승자는 늘 소수이고 패자는 다수라는 사실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우리 시대는 자본주의적 생활 원리가 지배하는 시대이고,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상품과 소비에 의해 삶의 질이 결정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소비는 이제 단순한 물건의 사용이라는 차원을 넘어서서 ‘내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가에 관한 의식을 형성' 하는데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이제 모두 '고급차를 타고 브랜드 아파트에 살며 명품을 갖는 쾌락적인 삶을 원한다'  하지만 이렇게  매스미디어와 사회적 압력에 의해 조장된 욕망에만 내몰려서 살게 된다면 반드시 불행해진다. 과정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욕망에 사로잡혀 살게 될때, 내가 하는 행위 전체가 차와 아파트와 명품과 쾌락을 얻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직장생활은 '아파트와 쾌락의 시간을 위해 참아내야만 하는 괴로운 시간' 으로 규정되게 된다. 뇌의 활동은 무섭다. 이렇게 '회사 = 괴로운 곳' 이라는 고정관념이 생기는 순간에 우리의 뇌는 '괴로운 뱀소굴에 갇혀 있을때'와 똑같이 신체구조를 세팅한다. 스트레스 수치는 올라가고 근육은 긴장되고 면역역과 소화력은 떨어지며 걱정은 많아진다. 만약  매일 출근해야 하는 직장이 뱀소굴처럼 느껴진다면 얼마나 끔직하겠는가? 당연히  직장생활을 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참아내야만 하는 괴로운 시간은 점점 더 늘어지고 괴로움의 크기는 커지며 몸도 아프기 시적한다.
 
이 시점에서 다시 과정 지향적 삶에 대한 환기가 필요할 것이다.  직업 또는 직장은 돈벌이를 위한 수단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단지 그것만을 전면으로 내세우는 사고와 행동 습관을 갖는다면 우리는 심각한 정신적, 육체적 손상을 입을 수 있다. 그러한 생활방식은 장기적으로 신체적 균형을 무너뜨린다. 그러므로 항상 삶에 대해 과정을 중시하는 태도를 가지려 노력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해야할 일

 
인지적 측면에서는 내 사고 습관이 모든 일에 대해 '너무 결과지향적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사실을 빨리 눈치채야 한다. 이것은 메타 인지적 영역이다. 이것은 쉽지 않다. 자신과 삶에 대한 많은 성찰이 있어야 가능하다. 메타인지의 개선을 위해서는 걱정이나 생각할때 '나' 라는 용어대신 자신의 이름으로 생각을 진행해보면 좋다. 즉 '나는 괴롭네,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나는 뭐가 갖고 싶은거지?' 라고 하는 대신에 자신의 이름을 사용하여, 'XX는 괴로워하고 있네, XX는 어떻게 하는게 좋을까. XX는 결국 뭐가 갖고 싶은거지' 라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자신이 주체에서 대상으로 분리되면서 객관화시키는 메티인지가 발휘된다.
 
또한 행동적 측면에서 보면, 나의 무의식적 불안감을 안정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어쩌면 이게 더 근본적으로 우선시 되어야한다. 신체적 에너지를 충분히 비축하지 않으면 불안감은 더 커진다. 충분한 수면, 바른 식습관, 적절한 휴식, 명상 등을 통한 주의 집중력 개선 등이 필요하다. 이것은 그냥 좋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이것의 중요성을 알기 위해서는 자신의 내면속에 존재하는 무의식적 현상들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우리의 의식은 단지 '생각, 사고, 걱정'의 영역에만 존재한다. 우리의 감정과 고통은 파충류의 뇌에 해당하는 부분에서 관장한다. 변연계라 불리는 부분이다. 이 부분은 주로 불안감과 스트레스 수준을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 이 부분이 과민하게 활동하면 불안감이 많아져서, 제대로 된 집중이 힘들다. ADHD, 우울증도 편도체, 변연계의 예민한 활동이 원인이다. 이것을 안정화시키는 행동이 바로 명상과 수면, 휴식이다. 
우리 뇌 속에는 다양한 기능을 가진 모듈들이, 마치 각자 독자적 인격을 가진것처럼 서로 대화를 한다. 그것은 의식이 접근할 수 없는 영역에서 일어난다. 그래서 다중인격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 모듈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들의 대화가  감정, 느낌, 신체장기 감각이다. 그래서 감정이 올라오면 외부를 보지말고, 내면의 감정과 내장감각으로 주의를 돌리는 것이 필요하다.
 
  젊을때  경쟁과 무기력이 공존하는 직업현장에 뛰어들어, 성취감과 무력감, 좌절감을 경험해 보는 것이 결코 나쁜 경험이 아니다. 그것도 하나의 중요한 실패의 경험이며 자신의 회복탄력성과 멘탈의 성장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생각해야 할 것은, 직업이나 직장생활로 인생이 끝나거나 보장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인생은 언제 끝날지 모르며, 죽을때까지 정답은 없다. 환경은 계속 변화하며 인간은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한도내에서 욕망을 절제하며 살 수 밖에 없다. 그럴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내면의 스트레스를 낮추는 것이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즐거운 일이 있어도 내부에 스트레스가 높은 상태에서는 결코 행복할 수 없다. 과정지향적 삶이 대단한 것이 아니다. 낮은 스트레스, 편안한 내면을 유지하는 삶, 그것이 과정지향적 삶이고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삶의 모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