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잘 받고 있느냐?는 관리자의 물음에 그렇다고 대답했다.
사실은 교육은 어제 끝났다. 하지만 회사에는 오늘까지 교육계가 올라가 있다.
그래서 회사에 출근하지 않고 쉬고 있었는데 전화를 받은 것이다.
뭐 힘든 교육 잘 받고 있냐는 안부전화였다.
그렇다고 대답했다.
마음이 영 불편하다. 전화를 안 받았으면 좋았겠지만, 전화를 받으니 기분이 안 좋다.
왜 전화를 받았는데 기분이 안 좋을까. 좋은 기회다.
이 감정은 정확하게 어떤 범주의 것인가?
두려움, 불안, 수치심, 분노
거짓말이 발각날 수도 있다는 두려움, 불안
거짓말을 하는 나 자신에 대한 수치심
굳이 왜 전화를 해서 나를 심란하게 하느냐? 는 분노
잘 생각해보니 이것들을 모두 아우르는 것은 죄책감이다.
죄책감은 속죄가 아니다.
그저 인정받기를 바라는 나의 욕망이 좌절될 것에 대한 신체의 대비책이다.
내가 무시할려고 해도, 안없어지는 것을 보니 뭔가 교묘한 욕망이 개입되 있는 것 같다.
'나는 충분히 괴로움으로 벌을 받고 있어.
그래, 스스로에게 벌을 주고, 스스로 기꺼이 벌을 받고 있으니까 나는 그래도 괜챦은 놈이야.'
잘 들여다보니, 이런 얄팍한 자기합리화의 방어기제다.
그렇다면 죄책감이 들때 속죄는 무엇인가?
'나는 어떤 사람에게 인정받기를 원했는데, 그 사람이 인정하지 못할 일을 했어.
그 사람이 나를 무시하고 인정하지 않는다 해도, 그건 자업자득이야. 받아들이겠어.'
라고 과보를 받아들이겠다는 수용의 자세를 취하는 것이다.
'만약 그가 이번에는 다행히도 모르고 넘어갈 수도 있다. 너무나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고치지 않으면 다음에는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다. 조심하자.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이 행동하며 죄책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런 사람을 함부로 무시하면 안되겠다.'
라고 개선 및 타인에 대한 수용의 자세를 취하면 된다.
돈 안 갚으면 욕먹어야한다.
부탁을 거절하면 그 사람은 나를 욕할 수 있고 욕먹어야 한다.
그게 속죄다.
그게 싫으면 돈 갚으면 되고, 돈 빌려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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