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으로 심리학에서는 감정을 특정한 목표지향적 행위를 하기 위한 준비단계로 보아왔다. 하지만 현대 뇌과학자들과 심리학자들은 감정을 행동 그 자체로 본다. 지나는 Fixed Action Pattern 으로, 프리스턴은 내부감각을 바탕으로 한 능동적 추론에서 비롯된 행위상태로, 배럿은 알로스테시스를 위한 신체의 통합행위로 본다.
그래서 부정적 정서 자체를 다스리려는 노력은 별 의미가 없다. 신체 자원의 고갈이나 불균형상태 때문에 지속적으로 올라오는 부정적인 감정을 인위적으로 '조절'하기 위해 기분 좋은 생각을 하거나 즐거운 추억을 떠올리는 것은 효과적인 대응책이 될 수 없다.
감정은 몸의 문제이고 일종의 신체현상이다. 감정은 몸이 주는 다양한 감각정보를 바탕으로 구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감정의 조절은 몸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가령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는 것, 그래서 균형을 잘 유지하는 것이다.이것은 매우 당연한 말처럼 들리지만, 그래서 하기 어렵다.
여기까지가 내면소통이라는 책에 나온 이야기이다. 하지만 뭔가 부족하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무의식적이고 자동적으로 동작하는 내 몸의 신경활동을 어떻게 하면 바꿀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어떤 장면을 봤다고 하자. 그 장면에서 우리는 감정을 느낀다. 눈을 통해서 본 장면이든,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장면이든 마찬가지다. 사람은 어떤 사물을 단순히 그 사물로 보지 못한다. 거기에는 반드시 나에게 이익이 된다거나 손해가 된다거나 하는 과거의 경험이 녹아 들어간 '고정관념'이 채색되어 있다. 그 사물은 나에게 손해를 끼쳤다. '사물이 이러저러하다면 나에게 더 이익이었을 텐데' 라는 무의식적 사고가 내가 과거에 놓친 이익의 기회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면 내가 '가질수도 있었던' 이익을 '상실' 했다는 '결핍'이 떠오르게 되고 이것은 내 안 장기들의 상태를 바꿔놓는다. 결핍으로 심장은 뛰고 위장은 뒤틀리고 피부는 마르며 입속은 건조해질 수 있다. 이러한 신체의 변화는 정상상태의 내가 가져야 할 신체상태가 아니다. 오류상태인 것이다. 이 오류상태는 부정적인 느낌을 만들고 여기에 맥락과 상황에 따른 추측이 들어가 부정적 감정이 생성된다.
물론 잘 자고, 잘 쉬고, 잘 먹어서 신체가 균형을 잡고 있다면 이러한 내부감각의 부정적 변화는 '인내의 창' 안에 있으므로, 감정적 데미지도 단기간에 회복될 수 있다. 하지만 몸이 균형을 잃게 되면 언제든지 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훈련을 통해 개입할 수 있는 찬스가 한 곳에 있다. 바로 '가질수도 있었던 이익을 상실했다는 고정관념' 이 튀어나오는 시점이다. 그래서 결핍이 느껴지고 신체가 변화되는 초창기 시점 말이다.
명상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자주 들여다 본 사람이라면 미세한 신체변화와 느낌이 발생하는 초기 시점을 알아챌 수 있다. 그리고 거기서 '가질수도 있었지만, 이미 지나가버려, 후회해봤지 되돌리수 없는 아무 의미없는 과거에 대한 후회, 집착' 을 내려 놓는 훈련이 가능하다. 그 시점에 폭풍이 되는 감정과 행동으로 진행하지 않고 그곳에 멈춰서서 그 느낌과 감정이 무상하므로 사라지기를 기다리는 훈련을 하는 것이 생활속의 사띠 명상이다.
요새 draw.io 라는 사이트에서 플로우차트를 그려보고 있다. 감정과 통증의 괴로움 상태에서 명상을 통해 그것을 수용하고자 한다. 신수심법의 사념처 명상을 하는 과정에 있어 아래 그림을 상상하며 내가 지금 어느 단계에 있는가를 따져본다.
나름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