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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과 생각 - 색수상행식

생각한다는 과정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대상이 나타남  =>   신체가 변형됨  =>  느낌이 나타남   =>   감정이.나타남  => 생각이 나타남    => 판단이 나타남  = >  행동이 나타남  =>    습관이 형성됨
 
대상의 종류 : 감각대상, 기억속에 저장된 걱정거리,  생각의 결과물   
신체변형 : 과거에 겪은 대상에 대한 최종 신체상태가 재현됨
느낌의형성 : 쾌(생존, 균형, 안정, 안전), 불쾌(균형붕괴위험, 불확실함)
감정의 형성 : 신체상태, 느낌, 대상을 종합하여 느낌보다 한단계 더 나아가 구체적인 대응방향 (도망, 접근, 중요함기억)을 제시/독려하고자 다양한 신체 통증을 발생시키는 무의식적 영역의 활동
생각의 형성 : 현상황 추측, 시뮬레이션, 논리회로, 의미부여
판단의 형성 : 의미있는 행위에 대한 방향성 제시
행동으로 옮겨짐 : 무의식적 영역의 FAP 모듈이, 생각이 제시한 의미있는 행위계획을 상세 근육별로 제어하여 움직임 발생시킴
습관형성 : 이 전체 과정은 무의식(업식)의 주도로 일어남. 의식은 이 모든 현상을 생생히 느끼며 공유할 수 있음.
그러므로 의식은  자신이 이 행위들의 주관자라고 여기게 됨. 이것을 자의식이라고 부름.   이렇게 자신이 주관한다고 느끼면서도 실제로는 과거에 형성된  습관에 따라 의사결정하고 행동하는 무의식적 행위를 업식이라고 부름. 이렇게 모든것을 자신이 주관한다는 자의식의 특징이 과대망상적으로  크게 되면 EGO 라고 부름. 이것도 자동화되어 의식의 영역밖에 있음.
현재의 의식(감각과 기억을 재료로 생각을 하는)이 업식의 행위에 별다른 필터링을 하지 못하면, 업식은 원래의 방향성을 가지고 습관처럼 굴러감. 이렇게 현재까지 발생한 이벤트들을 운명이라고 부름.
 
경계와 접하면서 대상이 인식되며 빠른 경로를 통해 신체가 변형되고 감정이 생김.
대상이 감각기관을 자극하면  대상은 무의식의 주의를 끌며 인식됩니다.. 혹은 뇌속에 저장되어 있던 기억 중 특정기억 이미지(무의식적으로 생존에 중요하다고 인식되어 있던 최근의 기억) 가 뇌속에 펼쳐져도 무의식의 주의를 끌고 인식됩니다.
 
이렇게 대상이 인식되면 신체표지(somatic marker)가 작동합니다. 저는 이것을 신체기억이라고 표현하는게 좀 더 이해하기 쉽다고 생각합니다. 신체기억이 무엇일까요?
무의식적 영역에는 생존과 번식에 유익한 것을 판단하는 가치시스템(value system)이 신체적으로 이미 구현(체화)되어 있습니다. 생존을 위한 본능의 측면에서 보면  산소, 물,  영양, 온도등이 매우 중요할 것입니다. 이것들이 부족해서 개체내부의 균형이 깨지면 신체기억이 동작합니다. 가령 수분이 부족하게 되면 무의식적 영역은 혀와 입술에 수분공급을 차단합니다. 이 신체적 증상은 갈증이라는 물을 향한  충동을 일으킵니다. 위가 비면 위의 뒤틀림을 통해 배고픔의 고통을, 산소가 부족하면 폐의 뒤틀림을 통해 답답함의 고통이 생성됩니다.
에고(개체 단위의 고유의 경험지식기억과 가치체계를 기반으로 세상을 경험함) 에서도 신체기억은 일어납니다.  만약 돈을  굉장히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 돈을 잃게되는 상황(손해보는 장면이나 기억)을 맞닥뜨리면 우리의 신체는 고통을 일으킵니다. 심장은 뛰고 위장은 뒤틀리며 혈압은 올라가고 근육들은 긴장합니다. 대상에 대한 인식이 이  신체기억과 고정관념을 소환하여 쾌, 불쾌, 통증의 느낌과 감정이 형성됩니다.
가치체계 이외에도  불확실성도 부정적 신체기억을 소환합니다. 무엇인가 처음 맞닥뜨리는 경험은 예측불가능성 때문에 불안합니다. 나를 해치는 적일지, 나를 도와줄 아군인지 아직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우리의 신체는 이런 상태를 기피하게 설계되었습니다. 두려움을 생성합니다. 그 두려움과 불안이 상대에 주의를 집중하여 좀 더 빠르게 적인지 동료인지 판단하도록  '독려'합니다. 

현시점 가장 강한 감정에 의식은 주의를 빼앗김.

만약 강한 느낌과 감정이 발생되면, 의식의  모든 주의는 온통 이 충동 혹은 불쾌함에 쏠리게 되고, 이것을 해결하기 위한 생각을 하기 시작합니다. 만약 그  자극이 강한 느낌과 감정을 생성하지 못하면(즉 다른 정보나 자극과 비교해 생존에 하챦은 것이라고 판단되면) 현재 의식(대상을 인식하고, 존재한다고 생생하게 느끼는 주체)의 주의를 끌지 못합니다.
 
자려고 할 때 모기소리가 들리면 우리는 모기를 잡으려고 합니다.  청각을 통한 모기에 대한 인식과 무의식적 영역속에 모기에 대한 고정관념 (나쁜 것이라는) 이 더해져 불쾌함이라는 감정을 만듭니다. 이 감정을 감지한 현재의식은 (무의식이 제시한 방향과 강도에 맞추어) 모기를 잡을 시나리오(궁리)를 만듭니다. 그 시나리오, 궁리, 스토리, 에피소드, 행동에 대한 시뮬레이션 등을  생각이라고 부릅니다.

만약 과거의 사건 기억이 자꾸 떠오른다면, 의식은 그것을 해결하려 달려듭니다. 과거에 대한 후회가 계속됩니다. 안좋은 미래의 화면이 뇌속에 자꾸 떠오른다면 의식은 그것에 주의를 빼앗기고, 의식은 불안한 생각을 계속 생성해냅니다.
 
통상적으로 생각의 출발점을 되짚어 보면 두가지로 나뉩니다 모기처럼 외부의 자극을 통해서 나의 생각이 촉발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무의식적 영역속에 저장된 (우선순위 높은) 걱정거리가 , 한가할때 촉발되는 경우입니다.
 
만약 현재의 감정보다 더 강한  감정이 생긴다면 의식의 주의는 그쪽으로 넘어가죠. 모기를 잡고 있는데, 옆에서 폭탄이 터지면  계속 모기를 잡고 있지는 않겠죠
 
무의식적 영역은 느낌과 감정을 통해서, 의식이 더욱 집중하고 깊게 생각하도록 독려함. 그래서 완벽한 솔루션을 얻고자 함.

무의식적 영역은  신체와 강하게 커플되어 있고 신체의 고통(감정)을 통해서 의식을 통제하고 길들입니다. 고통을 현상적으로 강하게 경험하는 의식은  이것을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타이슨에게 맞기전까지는 누구나 계획이 있습니다. 의식도 머리로는 '습관'에 당하지 않겠다는 계획이 있습니다. 하지만 통증과 감정의 고통, 충동이 찾아올때 그것을 견뎌내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의식이 무의식 영역에 강하게 사로잡혀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감정은 의식이 대상에 더욱 집중하여, 생각에 몰두해 문제를 푸는 솔루션을 낼 수 있도록 '독려' 합니다.
의식이 제시한 어떤 솔루션이 신체내부의 균형을 되돌리는데 기여한다거나, 불확실성을 제거하는데 성공했다면 쾌감을 통해 '칭찬, 보상'해 줍니다.이렇게 무의식은 의식을 길들입니다.
 
문제는 무의식적 영역은 매우 엄격해서,  생각이 제시한 해결책에 대해 주로 부정적 평가를 합니다. 실패를 최소화하고 행동하기전에 모든 장단점을 잘따져  최대한의 이익을 보려고 하는 것이죠. 그래서 생각이 내놓는 솔루션에 대해 낙제점을 주고 불쾌한 감정을 다시 발생시킵니다. 좀더 최적화해서 전혀 손해보지 않는 완벽한 솔루션을 '생각만으로' 제시하라는 것이죠. 사실 한계가 있죠. 이것을 계속하는게 걱정입니다.
 
미약하나마 의식은 주의 통제력을 갖고 있음. 이것이 발달되면 '알아차림'이 일어남
하지만  무의식 영역이 이끄는 대로 의식의 주의가  100% 끌려가지는 않습니다.(주로 본능과 고정관념의 습관 수준으로 자극에 바로 반응하려는)  무의식적 영역을 견제하기 위하여 의식이 진화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의식에게는 미약하나마 "주의통제권'이 있습니다. 인간이 다른 포유류와 구분되는 영역입니다. 하지만 이 힘은 미약합니다.우리는 인위적으로 호흡을 참을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생명에 위협을 느낄 정도가 되면 무의식 영역은 고통을 통해 강제로 호흡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고 갑니다. 의식의 신체통제권, 나아가 생각통제권은 매우 미약하고 힘이 없다는 것을  아는게 중요합니다.

이 의식의 주의통제권이 발달된 것이 소위 '알아차림'입니다. 무의식에 끌려가던 의식이 불현듯 자신의 '주의에 대한 주의' 를 하게 됩니다.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지?  생각에 대한 생각, 의식에 대한 의식을 하는 것이죠.
그러면서 무의식적 영역의 존재를  알아차리게 됩니다.  불쾌한 느낌과 감정으로 나를 계속 두려움과 불안으로 내몰아서 끊임없이 제시된 대상에 주의를 머물게 하는 내안의 "본능적 특성"을 눈치채는 것이죠. 그것에서 한발자국도 뗄수 없게, 집착하게 만드는구나. 하고 알게 되는 것이죠. 외부에 머물던 주의를 자신의 내부로 돌리는 것입니다.

알아차림이 반복되면 자동화된 알아차림(주의를 대상이 아닌 '감정을 일으키는 내부업식'  으로 향함)이 일어남
 첫번째 알아차림은 한번의 우연한 경험이지만 그 경험은 무의식 영역으로 녹아들어가 나의 개체적 특성이 됩니다.
알아차림 경험이 많아지고 습관이 되면, 알아차림도 무의식적 영역이 됩니다.
이렇게 되면, 대상이 나타날때 기존에는  항상 대상에 대한 신체변화와 충동 불쾌의 느낌만이 출현했지만,  이제는 내면의 의도를 알아차림이라는 습관이 감정뒤에 함께 나타납니다.
'느낌과 감정이 업식이 일으키는 현상일뿐'  이라는 사띠기억이 나타나면 기존의 느낌과 감정은 수그러듭니다.  느낌변화에 성공했다는 좋은 느낌도 나타납니다.

불쾌한 신체기억이 고통의 감정만을 유발했던 프로세스가 바뀐것입니다.
기존에는 불쾌신체기억의 고통이 괴로워서 어떻게든 대상(그것이 대상물이든, 타인이든, 환경이든, 세상이든, 순리든, 불확실성이든 )을 바꾸는데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이제는 느낌과 감정을 없애는 외부대상을 향한 인위적 노력에 과하게 집착하며 진을 빼지 않습니다.
그것을 알아채고 계속 지켜보기만  해도 힘을 잃고 스스로 물러난다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무상을 머리가 아닌 몸으로 체험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 경험을 처음 해보면 황홀경에 빠지기도 하고, 끊임없이 눈물이 나기도 합니다. 삶의 구원을 얻은듯한 느낌도 듭니다. 나를 그토록 끊임없이 괴롭히던 감정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는 희망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다시 되돌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경험을 해본 의식은 주의를 내부로 돌리려 하나,  기존의 무의식 영역은 아직도 힘이 세서 주의를 외부에 두려고 합니다.  둘 사이에 주의쟁탈전이 벌어집니다.

하지만 수행을 성공적으로 계속하면  점차 그 싸움은 잦아듭니다.  
수행을 성공적으로 계속한다는 것은 공부가 아니라 체화, 훈련을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어디에 주목하고 있는지 알아채는 습관'을 무의식적 레벨까지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뇌의 무의식 영역은 도파민에 의해서 동작합니다. 습관이 되면 도파민이 나옵니다.
알아차림 프로세스가 도파민을 생성시키는 레벨까지 가면, 이제 우리의 몸은 노력하지 않아도 알아차림을 수행합니다.
내부의 감정과 느낌을 무의식적 레벨에서 자동적으로 살핍니다.
한가한 디폴트 모드에서도  습관적으로 내면의 감정과 느낌을 살핍니다.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항상  깨어서 느낌, 감정, 생각 현상 자체를 알아차리게 됩니다.
파도에 휩쓸려 허우적 대던 사람이, 한가한 해변가로 나와 감정과 생각이라는 파도를 지켜보게 됩니다.
이것이 수행의 궁극적  목표입니다. 과거의 업식, 습관적 패턴에 끌려가지 않고, 대상과 함께 업식이 일으키는 느낌과 감정 생각들을 자동적으로 관찰하는 무의식 영역을 창조해내는 것이죠.

인위적으로  '생각을 하지 않는다, 활용한다'라고 아무리 생각해봤자 현재의 상태를 개선할 수 없습니다.
 
대상에 대해 느낌을 기반으로, 여러 기억과 경험을 소환하여  작업영역에 올려놓고 올바른 반응의 구체적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의식의 역할입니다.
의식의 주요 작용인 이 생각활동이 없으면 의미있는 행동(반사작용이 아닌), 행위(자발적 행동)을 할 수가 없습니다.생각활동은 의식의 숙명입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생각은 해야 합니다.  
 
무의식 영역을 변화시키지 않고, 단순히 경계를 통해 알게된 지식으로 의식을 통해 생각을 굴려봤자 느낌 자체는 바꿀수가 없습니다. 빠져나올수가 없죠. 위에서 언급했듯이  의식은 주의를 내부로 돌릴려 하나,  무의식 영역은 주의를 외부에 두려고 합니다. 그러면 무의식 영역이 결국 이깁니다.
그래서 머리로는 빠져나가야지 하지만, 불길한 느낌과 감정에 사로잡혀 행동으 로 옮기지 못하는 쓸데없이 과다한 생각을 계속 하게 됩니다. 이것이 번뇌이자 괴로움입니다.
 
수행을 하는 과정은 업식이라는 무의식영역을 의식화시키고,  알아차림이라는 의식영역을 무의식화시킨다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무의식적이고 습관적인 생각을  '알아차림'해야 합니다. 생각을 알아차리기 어렵다면 내가 어디에 주의를 두고 있는지 알아차려보세요. 내가 이걸 왜 보고 있지? 내가 지금 뭘하고 있는거지?

일반적인  대상을 인식한다는 의미로 쓰는 '안다'라는 것과 '무의식의 정체를 안다'라는 알아차림은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고통없는 편안한 마음으로 목표에 집중하기

감정을 통해 여러 생각이 생겨나지만, 즉시 무의식을 만족시키는 솔루션이 아니면 우리의 신체는 계속해서 불쾌한 상태를 만듭니다. 의식은 이 모든 것을 고통으로  생생하게 느낍니다.

이것 자체는 나쁜게 아닙니다..이것이 바로 의식과 생각의 존재이유이니까요.
문제는 무의식의 판단기준이 너무 엄격해
의식이 감정자체에 저항하고 회피하는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감정으로부터 주의를 돌려 맛있는 걸 먹거나, 재미있는 영화를 봅니다.
하지만 임시방편일 뿐입니다.

그러면 무의식은 의식이 자신의 의도를 알지 못한다고 판단하여
더 강한 불쾌함과 괴로움을 생성합니다.
의식은 감정자체가 더 싫어져서, 더 도망가려, 더 딴짓을 하는 악순환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 상황이 반복되면 의식의 회피도 무의식화됩니다. 이것도 무의식이고 부를 수 있지만 혼돈을 막기위해 에고의 회피성향이라고 부를께요.

먼저 감정을 알아차리세요.
그리고 감정뒤에 나타나는 에고의 회피성향을 알아차리세요.
그래야 도망가지 않게 됩니다.
그 다음에 감정을 만드는 무의식의 의도, 무의식화된 가치체계를 알아차리세요.
그렇게 나의 무의식적 가치체계를 알아채고
그것을 내 상황과 수준에 맞게 수정하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불쾌함이 덜 올라올 것이고, 올라오더라도 빨리 그 가치체계를 현실적으로 수정하는데 노력을 쏟게 될 것입니다.

에고의 무의식적 가치체계는 대부분이 욕심입니다.
내 상황이나 수준에 비해 과하게 바라니 고통이 생기는 것입니다.
내 무의식적 가치체계를 수정한다는 것은
욕심과 고통이라는 시소의 수평을 맞추는 일입니다.
자신의 능력과 수준 상황에 맞는 목표를 찾아 스스로 선택을 하면 됩니다.
괴로우면 목표를 낮추거나 통제력을 높히세요.
이 과정을 반복하세요..매일 매순간.

마무리

개인마다 경험한 지식과 기억체계가 다릅니다.
생각은 이 특수하고 좁은 경험과 기억만으로 지금 맞닥뜨린 눈앞의 모든 현상을 설명하는 대통일 이론을  끊임없이 만들어 냅니다.
그것이 관념입니다. 관념은 습관이 되면 확신이 되고 고정관념이 됩니다.

새로운 관념을, 기존의 고정관념만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맴돌이를 발생시킵니다.
마치 뱀이 꼬리를 물고 들어가는 것과 같은 혼돈에 빠지게 됩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잘 모르게 됩니다. 

알아차림이 그렇습니다
알아차림의 설명은 한계가 있습니다. 체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알아차림을 훈련하지 않고, 공부와 생각만 많이하면
도리어  알아차림이 없는 에고를 강화시킵니다.
지식만 많아져서 우쭐대고, 감정과 현실을 회피하는 도구로 쓰게됩니다.
잘못하면 자의식과잉의 신포도 여우가 됩니다.
더 잘못되면 과대망상의 조현병환자가 됩니다.

그래서 '알아차림이라는 생각'자체에 대한 생각은 적게하세요.
대신 알아차림을 훈련해서 몸에 체화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느정도 체화되었는지는, 현재 의식이 내 주의통제권을 어느정도  제대로 행사하는지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주의통제권을 잡고 무의식을 무시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무의식적 영역에 통제권을 내 줄때도 있습니다.
무의식적 영역에 사로잡히는게 아니라, 주의를 기꺼이 허락하는 겁니다.
가끔은 살이 찔것을 기꺼이 감수하고 디저트를 선택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알아차림에 대한 생각을 너무 많이 하지말라고 해서 생각자체를 적게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생각은 많이 할 수록 좋습니다. 좋은 생각입니다.
좋은 생각은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해 실천 가능한  대안을 내는 구체적 궁리와 집중입니다. 내가 정한 목표에 대해 몰두하고 몰입하는 생각입니다.  

그에 반해 나쁜 생각은 감정에 잘못 대응하는 생각입니다. 감정이 지시하는 무의식의 의도를 모른채   감정이 주는 고통에 사로잡혀 , 생긴 감정을 없애려는 즉각적이고  인위적 방법에 과몰입하는 것입니다. 현실도피적 망상, 신세한탄, 남탓, 세상탓, 직장 때려침, 맛있는 것 먹기, 유튜브 몰입 등 잠시 고통을 잊게하는 회피하고 도망가는 생각 모두 여기에 속합니다.

이렇게 끄적거려보는 것도, 회피만 아니라면 체화과정으로서 좋은 훈련이 됩니다.

만약 여기까지 읽은 분 있다면  가독성 고려없이 흘러나오는대로 갈겨쓴 난해한 글 읽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

모두들 괴롭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그럴러면  현실로 나가셔서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구체적 생각으로 옮겨가셔야 합니다. 그 생각도 간명하고  짧게하셔야 합니다. 생각만 계속 하면 괴로워집니다.  보통 이렇게 알아차림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욕심이 많고 생각이 많고 그래서 고통이 많은 분들입니다. 제가 그렇거든요.
고통에서 빨리 벗어나겠다는 것도 욕심이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이제  알아차림에 대한 생각은 그만하고  세상으로 나가는 한걸음을 떼셔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