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행복한 사람과 목적없는 대화…스트레스 피하는 최고의 방법

동트는새벽 2019. 11. 22. 11:08

필자의 오랜 친구 고려대 심리학과 고영건 교수가 몇 해 전 필자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다. "김 교수, 지옥에 있는 사람들
보다 더 힘든 사람들이 누군지 알아?" 이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망설이던 필자에게 그는 매우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했다.
"지옥을 보는 사람들이야." 필자는 순간 고 교수 말에 심리학의 수백 가지 연구들이 한번에 요약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실제로
관련된 연구들은 무수히 많다.
굳이 사람이 아니고 동물조차도 지옥을 보면서 그곳에 있는 존재들보다 더 큰 괴로움을 경험한다. 예를 들어 전기 충격을 당하는
쥐보다 전기 충격으로 고통받고 있는 상대방을 보는 쥐들이 더 많은 스트레스를 뇌에서 처리하는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지옥에 있는 사람들과 쥐장 안에서 전기 충격으로 고통받는 쥐들 모두 공통점이 있다.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나 역시 벗어날 수 없다는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그러니 벗어날 수 없다는 것, 즉 변화 없음에서 인간은 가장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스트레스를 벗어나는 순간의 경험을 뇌가 기억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 해방과 탈출의 기분을 뇌가 똑똑히 기억하고 있어야 이후 유사하거나 심지어 더 큰 스트레스를 경험하고 있을 때 그대로 주저앉는 것이 아니라 그 기억을 떠올리면서 다시금 벗어
나고자 하는 움직임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요약하자면 스트레스의 핵심은 변화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또 다른 착각 하나를 반드시 경계해야 한다. 그 변화가 매우 크고 거창한 것이어야만 스트레스에서 더 잘 탈출할 것이라고 하는 생각이다. 하지만 심리학자들이 늘 경고하는 것이 큰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한 크고 거창한 변화는 항상 더 큰 스트레스를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보자. 스트레스에서 확 벗어나기 위해 큰 맘 먹고
외국 여행을 떠났다. 그런데 외국에서는 일단 말이 통하지 않는다. 문화도 다르다. 그러니 자기가 상황과 주변을 스스로 변화시킬 수 있는 여지가 크게 떨어진다. 그런데 스트레스는 자신의 통제감이 떨어지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금만 바꾸는 것 중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가까운 주위에서 행복한 사람을 만나 목적 없는 대화를 하는 것이다.
행복한 사람을 만나면 오히려 나만 불행한 것 같아 배알이 꼴릴 것 같으신가. 결코 그렇지 않다. 그렇게 느낀다면 행복한 그 사람과
대화하면서 돈을 빌린다거나 부탁을 한다거나 아니면 어떤 정보를 알아내고픈 목적을 가지고 임하고 있기 때문이다. 목적이 없는
소소하고도 자질구레한 대화를 나누다보면 자신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당연히 그 느낌 자체가 문제를 해결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바뀐 느낌을 통해서 자신의 스트레스 유발 요인에 대해 바꿔 보려는 동기와 힘을 얻는 것이다. 그러니
행복한 사람을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시라. 사람은 바꿀 수 없는 문제 때문에 망하지 않는다. 첫째, 바꿀 수 있는데도 바꾸지 않아서 망한다. 둘째, 너무 많이 바꾸다가 지치거나 무서워 망한다. 그러니 벗어나고 바뀌고 있다는 `작은` 느낌을 행복한 사람들을 만나 목적 없는 대화를 통해 가져보는 것이야말로
작은 변화를 만들어 내는 데 무엇보다도 필요한 행동이다.
아직은 우리말로 번역되지 않았지만 `추론의 수수께끼(The Enigma of Reason)`라는 책을 통해 인지과학자 휴고 메르시에(Hugo Mercier)와 댄 스퍼버(Dan Sperber)는 이렇게 말한다. "지능 관점에서 보면 우리 마음은 이상하거나 어리석은, 심지어 말도 안
되는 바보 같은 짓을 하도록 설계된 것처럼 보인다. 그중에 하나가 곁에 있는 사람들과 비슷해지려는 무의식이다. 하지만 이는 사회성 관점에서 보면 우리 인간의 마음이 협동에 얼마나 최적화돼 있는지를 알게 해 주는 대목이다."
[매일경제 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