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와 생리작용-충동, 두려움, 중독의 체화
목이 말라 물이 마시고 싶을때가 있다.
이 때 '나는 마시고 싶은 욕망울 흘려보낸다' 라고 명상하는 사람은 없울 것이다.
왜 그럴가?
생리는 몸의 당연한 작용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몸의 구조가 그러한 것이다' 라고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뱀을 보고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이 때 '나는 놀라는 것을 흘려보낸다'라고 명상하는 것은 어떠할까?
이것은 생리인가? 심리인가? 아마도 생리에 가깝기는 하지만 심리의 영역에 조금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알콜 중독은 어떠할까? 이건 조금 더 애매하다.
원하지 않는 생각과 불안, 두려움과 충동 등의 경우에도 100% 온전하게 심리적 요인뿐이라고 말 할수는 없다.
이렇게 되면 궁금하게 된다.
인간에게 있어 순수하게 심리적인 요인만으로 구성된 것이 있는가?
있다면 아마도 '처음 해본 생각'일 것이다. '문득 든 생각'. 경계로부터 스며든 무지의 생각.
같은 생각을 두번 이상 하면 이미 생리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몸에 새겨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지하지 못한 습관은 생리의 영역이다.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은 연기의 원리로 세상을 보는 훈련이 덜 되어 있다는 것이다.
감정과 저항의 영역도 이러하다.
명상은 생리적 현상을 인식하고, 그것을 내 의지의 영역으로 가져오고자 하는 것이다.
형성된 감정과 관념이 어떻게 연기적으로 내 몸에 새겨졌는지를 알아채고 수용하는 것이다.
그 알아챔과 수용을 생리적 현상이 될 때까지 반복하는 것이 수행이다.
그래서 이 새로운 생리적 현상이 제 2의 천성, 가장 강한 무의식이 되도록 자주 소환하고 자극해 주는 것이다.
알아챔, 수용, 연기의 원리로 세상보는 습관을
목이 마른 것처럼,
뱀을 보고 놀라는 것처럼,
알콜 중독처럼
신체화시키는 것이다.
나에게 있어 가장 큰 불선업은 무엇일까?
이미 골수까지 파고들어 신체화된 '등가교환에서 이익보고자 하는 마음'을
의식하지 못하고 좀비처럼 따르는 것이다.
이것을 눈치채고 연기적으로 바라보고 수용하고 놓아주고 멀어지는 것.
그 행위를 완성해 나가는 것
그 과정에 나를 세우는것
그것이 나에게 있어 명상이고 수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