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로는 알겠는데 실천이 안되는 이유
우리는 모두 '해야 되는데...해야되는데' 하면서 실천을 못 옮기는 것이 있습니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실천이 안되는 경우입니다.
왜 그럴까요? 몸이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기억적 지식만으로는 나를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그 지식의 효용성을 '몸이 느낄때' 실천이 됩니다.
나쁜 습관을 고치려면 다음 조건들이 선행되어야 실천으로 옮겨집니다.
1. 내가 아는 것을 얼마나 실천하고 있는지 관찰할 수 있어야 합니다.
2. 실천하지 않을 때 나에게 고통이 있어야 합니다.
3. 실천하지 않는 고통이, 습관을 포기하는 고통보다 더 크다고 느껴야 합니다.
위 세가지 조건이 만족되면, 앎은 내 몸에 스며들어 새로운 습관이 됩니다.
나를 변화시킬 수 있죠.
더 나은 사람이 되려는 것도 똑같습니다.
1. 내가 바라는 모습과 현실의 내 모습을 관찰할 수 있어야 합니다.
2. 현실유지가 고통으로 느껴져야 합니다.
3. 현실을 유지하는 고통이, 습관을 포기하는 고통보다 더 크다고 느껴져야 합니다.
하지만 어렵죠. 그래서 법륜스님이 좋은 방법을 제시해주셨습니다.
"웬만하면 생긴대로 살아라.
꼭 습관을 고치고 싶다면, 원하지 않는 습관이 나타났을때 전기충격기로 허벅지를 지져서 까무라치게 해라. 3번만 해도 악습이 고쳐질거다.'
지식을 실천으로 옮기는데는 그만큼의 값을 치뤄야 합니다.
구축해온 나의 습관의 세계를 부숴야 합니다.
그것은 나를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두렵습니다. 귀챦습니다. 아픕니다.
그래도 변하고 싶다면 이 모든 고통을 감내해야 합니다.
그러나 매우 힘듭니다.
그러니 나에게도 적당히 바라세요.
그냥 내 모습을 인정하고 수용하고 저항하지 마세요.
본인에게 충조평판하지 않는 사람이
가장 고수의 경지에 이른 사람입니다.
사실 우리의 모든 행동원리는 위에서 이야기한 것과 동일합니다.
치뤄야 하는 대가보다 얻는 이익이 더 클때 우리는 행동합니다.
그런데 이 계산을 머리만 하는게 아니라 몸(습관이 체화되어 각인된 몸)도 합니다.
머리로는 분명 이익이라는 것을 알아도, 몸이 손해라고 계산하면 행동으로 옮겨갈 수 없어요.
몸이 손해라고 계산한 결과가 불쾌함, 불편함입니다.
어떤 일을 하려는데 불쾌하고 불편한 느낌이 들면 정말 하기 싫죠.
뱀 만지라고 하면 싫은거랑 똑같아요. 만지면 손해라고 느끼니 불편한 느낌이 올라오죠.
근데 그 뱀이 천억짜리라면 어떨까요?
아니면 그 뱀을 안만지면 바로 총살당한다면요?
불편한 느낌따위 상관없어집니다.
그래서 아는 것을 실천하고 싶다면, 실천하지 않을때 더 큰 고통이 찾아온다는 것을 몸에게 경험시켜야 합니다.
방법으로는 체벌과 쇄뇌가 있어요. 듣고 읽고 생각하는것만으로는 몸에 각인이 안됩니다.
전기충격기로 지져서 체벌을 합니다. 이게 가장 효과적일 것 같아요.
108배로 벌을 줘보세요. 이게 현실적이죠. 확실히 육체적 통증이 들어갈때 체감이 됩니다.주위에 떠벌려 보세요. 창피함이 고통스러워서 약속을 지키려 해요.
쇄뇌의 방법도 다양합니다.자기확언을 해보세요. 이건 글쎄요. 저한테는 잘 안 먹혔어요.지금 제가 쓰는 것처럼 글을 써보세요. 이 행위자체가 몸에 각인시키는 행위예요.
자신에게 잘 먹히는 방법을 찾으세요.
나한테 잘 맞는건 명상, 내가 개발한 주문(기도문)을 외는 것이었어요.
그 방법은 인터넷 찾아보면 무한대로 나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