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전재성 박사
-부처님의 생을 기리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보는 눈을 열어줬다고 해야 할까요. 부처님은 편견이나 도그마, 미신 등에 묶여 있던 정신을 연기사상을 통해 인과원리로 밝혀내셨지요. 부처님이 위대한 신통력이 있기 때문에 기리는 것은 아닐 겁니다.”
-불교는 합리적이란 말씀으로 들립니다. 내세, 윤회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죠.
“칸트가 이런 말을 합니다. ‘우리가 시간, 공간을 확대하지 않으면 세상 모든 일의 인과 관계를 설명하기 어렵다’. 시공간을 확대할수록 인과원리는 보다 합리적으로 밝혀질 수 있지요. 인과의 원리를 극한까지 확대한 게 부처님입니다. 적어도 가장 합리적이려고 노력했던 거라 생각해요. ‘윤회’, ‘무량겁의 세계’ 등이 인과원리를 합리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나타난 개념입니다.”
-설명이 가능하다는 게 일상생활에서 어떤 유익이 있을까요.
“어떤 고통에 대한 원인을 명확하게 알면, 그 고통을 치유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원인을 명확하게 알기 위해선 탐진치(貪瞋癡), 즉 탐욕, 분노, 어리석음이 없어야 합니다. 우리 마음이 탐진치에 물들어 있으면 객관 세계를 볼 수 없지요. 불교에서 윤회의 바다를 항해한다는 표현을 쓰는데, 물이 빨강 노랑 파랑으로 물들면 나아갈 길을 볼 수가 없어요. 탐진치를 제거한 상태에서 원인을 파악하면 바른 길로 갈 수 있습니다.”
-경전 번역을 하면서 느끼는 부처님, 불교는 어떤 모습입니까.
“쌍윳따 니까야에 이런 예화가 나옵니다. 부처님이 제자들과 길을 걷고 있는데, 불쌍한 사람이 옆을 지나갑니다. 어느 제자가 ‘부처님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죄를 짓지 않는 겁니까’ 물어요. 부처님께서 이렇게 답합니다. ‘나도 한때 그와 같은 사람이었다고 생각해라’. 불쌍한 마음에 음식이나 옷을 나눠줄 수 있지만 이 역시 내가 저들보다 우월하다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하는 행동일 수 있어요. 받는 사람도 그렇게 느낄 수 있지요. 부처님의 답변대로 생각한다면 우선 평정심을 찾을 수 있죠. 봉사대 조직, 시스템 개편 등은 다음 문제죠. 우선 마음의 죄를 짓지 않아야 하니까요. 단순하지만 역사상 아무도 이런 말씀을 한 분이 없었어요. 중국의 백거이가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해 제악막작(諸惡幕作), 중선봉행(衆善奉行)이라고 했는데, 그것은 원래 법구경의 부처님 말씀으로 좀더 정확히 초기경전의 말씀을 빌면, ‘결국은 착하고 건전한 것을 증진시키고, 악하고 불건전한 것을 감소시키는 것’을 뜻합니다. 불교는 상당히 다이내믹한 종교입니다. 서양 윤리에서는 선악구분이 신에 의해서 주어진 것인 반면, 불교에서 절대적인 선악은 없습니다. 착하고 건전한 것을 증가시키고 악하고 불건한 것을 감소시키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 선이고 그 반대로 움직임이 악이라고 말합니다.”
-갈등이 많은 사회입니다. 경전에서는 어떤 해법이 있을지 궁금합니다.
“소통이 문제입니다. 맛지마 니까야에 대화의 수호와 관련해 아무것도 ‘이것이야말로 진리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고 단정 지어 말하지 말라는 가르침이 나옵니다. 이를테면, 믿음에 대해서 말한다면, ‘이와 같이 나는 믿는다’라고 말해야지 ‘이것이야말로 진리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배움이나 선호, 형상에 대한 분석, 견해 이해에 대해서도 ‘배웠다, 좋아한다, 분석한다, 이해한다’라고 말하면 족하지 ‘이것이야말로 진리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고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대화의 언로는 닫히지 않고 우리는 보다 합리적인 해결을 모색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