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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을 극복한다는 것

동트는새벽 2022. 12. 29. 12:54

괴로움이 닥칠때
'이것은 고통이다'라고 명확히 의식하지 못하고
좀비적으로 도망다니며 살때
우리는 그것을 운명이라고 부른다.

즐거움이 닥칠때
이것은 고통의 씨앗이라고 명확히 의식하지 못하고
좀비적으로 쫓아다니며 살때
우리는 그것을 운명이라고 부른다.

만약 시련과 고통의 존재를 의식하고
발생 과정을 명확하게 의식하고,
그것을 줄일지 받아들일지 의식적으로 선택한다면
운명을 극복했다고 말한다.

만약 즐거움의 존재를 의식하고
인연과보를 의식하고
그것을 더 추구할지 멈출지를 의식적으로 선택한다면
운명을 극복했다고 말한다.

멈추고자, 줄이고자, 더 추구하고자 의도한다면
가능한 선택지를 궁리하고 행동을 의식적으로 선택한다.
우주적 질서에 내가 가한 한 줌 행동의 영향력은 매우 작다.
그러므로 1차 선택에 대한 결과는 내가 어쩔 수 없는 것임을
받아들이기를 다시 선택한다.

만약 선택지가 없는 소멸과 상실은
의식적으로 선택할 것 조차 없으므로
그저 우주적 질서에 순순히 항복하고 받아들이기를 선택한다.

이것이 운명에 끌려가지 않고, 운명을 개척하는 것이다.

대항할 수 없는  우주적 질서에, 철없는 망나니처럼 삐쭉대는
뇌속의 좀비를 따르는 삶이 운명이다.

나의 생물학적, 지역적 한계를 인식하고,
내게 주어진 대상과 자극들에 대해
가능한 여러가지 반응 중에서
특정 반응을 의식적으로 선택, 결정하는 행위

그것이 부드럽게 구현되는 몸과 맘을 구현해내는것.
오늘 저녁 죽더라도 그것을 선택하는 의지를 갖는 것
그리하여 좀비의 선택과 다소나마라도  분리된 삶.
그거이  삶의 가치이자 의미가 될 수 있을까?

그렇게 해서 마음의 안식과 평화가 온다면 땡큐고....
그렇지 못하더라도 달리 선택할 무엇이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