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없이 자유롭게 원하는 것을 이루며 사는 방법
우리는 대상을 찾아 떠돕니다. 밖에서는 감각대상의 선호분별을 찾아 헤메입니다. 나에게 이익이 되는 사람, 친절한 사람을 찾아 헤메고, 나에게 손해가 되는 사람, 나와 맞지않는 사람을 피해 도망다닙니다.
나의 내부안에서 발생하는 현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통증, 느낌, 감정, 생각에도 좋은 것, 싫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에서도 선호분별을 합니다. 안락함과 쾌적한 느낌, 감정, 생각은 좋아서 계속합니다. 불편한 느낌, 감정, 생각은 싫어서 어떻게든 그것을 회피해 도망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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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나의 편안함은 대상의 불편함을 전제로 성립됩니다. 이익을 편안함으로 삼는 이에게, 누군가는 손해를 봐야합니다. 쾌락을 편안함으로 삼는 이에게 몸의 희생이 필요합니다. 관계에서 내 마음만을 편안하게 하고자 한다면, 타인은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해야 합니다. 그의 입장에서는 때로 불편함이고 희생일 수 있습니다..
설사 편안함과 안락함을 잠깐 이뤘다 하더라도 생로병사앞에서 언젠가는 무너집니다. 언젠가 무너질 무상함에 매달리면, 전전긍긍하게 됩니다. 나의 이익, 나의 편안함과 안락함을 잃을까봐 불안해하는 이 무의식적 현상이 어린애 같은 마음, 노예같은 마음입니다. 이 마음은 모든 인간의 숙명이지요. 이 전전긍긍이 삶의 근본적 괴로움이며 무상함에의 집착에서 발생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될때가 수행의 시작점입니다.
이것을 깨달으면 전전긍긍(미래에는 편안하게 살아야 할텐데 어떡하지?)과 집착(꼭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해야한다.)을 버려야 합니다. 어떻게 인간이 그것을 버릴 수 있냐? 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 '어떻게' 라고 방법을 묻는다면 이미 부처님이 말씁하셨습니다. 팔정도를 지키며 계, 정, 혜를 삶속에서 꾸준히 닦아라. 그러면 어리석음과 집착을 버릴 수 있다. 하지만 이것도 하나의 방법론일 뿐입니다. 이 방법론에 심취하면 '어떻게' 라는 테크닉에 또 집착하게 됩니다. 전정긍긍과 집착을 버리라고 했는데 또 집착하는 것입니다. 이른바 법집입니다. 이것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기술'에 주의를 너무 뺏기면 안됩니다.
이 단계에서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해야 합니다.
'어떻게' 라는 질문에 집착하는 것을 보니, 나는 전정긍긍과 집착이 괴로움의 원인이라고 알고 있는 것이 아니다. 생각의 논리구조는 그것을 안다고 착각하나, 무의식과 신체는 그것을 부정하고 있다. 나의 무의식과 신체가 신봉하는 가치체계를 어떻게 바꿀것인가? 이것도 역시 어떻게 라는 질문으로 되돌아간다. 생각이라는 논리구조가 결국 '어떻게'라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하여 만들어졌다. 어떻게 라는 질문에 꼬리를 물며 생각을 계속하는 것은 답이 아니다.
여기까지만 생각이 필요합니다.
답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바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생각을 하지 않고 반사작용처럼 행동으로 옮겨가는 것입니다.
고통의 느낌, 고통의 감정, 전전긍긍, 걱정, 집착 등의 부정적 정서를 눈치챘다면, 바로 if 상태눈치챔 then 그만두기 입니다.그만두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호흡으로 주의 돌리기가 바로 써먹을 수 있는 방법입니다. 산책하기, 목욕하기, 잠자기, 운동하기 등도 있습니다. 만약 감정과 느낌이 너무 세다면 맛있는 것 먹기, 영화보기, 수다떨기 등의 회피 방어기제를 써서 그 강도를 낮출 수도 있습니다. 편안할때도 if 상태눈치챔 then 무의식 학습시키기를 실시하는 것이 좋습니다.
집착도 그만두고, '집착을 없애는 효과적인 방법에 대한 생각'도 그만두세요.그래야만 근본적인 방법이 됩니다.
어떻게 라는 의문이 떠오르면 '그냥, 습관적으로, 반사적으로 그만두는 행위를 한다' 라는 목표를 떠올리세요.
집착이 생기자마자 그것이 '그냥, 습관적으로, 반사적으로' 없어진다면 목표는 달성된 것입니다.
그 상태에서도 어떤 것을 원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집착이 없기 때문에 전전긍긍이 없습니다. 그래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실패해도 투덜대거나 좌절하지 않습니다.
집착을 없애는 것은 나의 경험, 문화, 신체, 에고, 무의식으로부터 자유로와지는 것입니다. 이 자유가 최종 목표입니다.
아이에게는 자유가 없습니다. 주어진 환경과 경계에 반응하며 전전긍긍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집착을 버리고 자유를 획득한 자는 어른입니다. 담대한 사자의 마음을 가진 자입니다.
이리저리 흩날리는 무상한 것에 흔들리지 않고, 뚜벅 뚜벅 자유롭게 자신만의 길을 갑니다..
그러다 보면 원하는 것이 가까이 다가오기도 하죠. 내가 다가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것도 부수적인 것이죠. 그저 집착이 없는 자유로운 상태에서 사는 것. 그것만큼 더 큰 보상은 없기 때문이죠. 부처님은 삶을 통해 이것을 보여주셨죠. 어떤 일을 해도 도파민이 충만하고 의욕적이 됩니다. 활기가 넘치게 됩니다. 설사 생로병사가 나를 덮치더라고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