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자, 과잉 자의식의 소유자
자아가 센 사람들은 자존심은 세나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이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인정하지 못한다.
그래서 타인에게 인정 받고 확인받아야 안심한다.
타인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면 괴로워하고 고통스러워 한다.
그러나 타인의 인정을 받는다는 것이 그렇게 쉽나?
능력이나 외모가 출중하지 않다면 어그로를 끄는 수밖에 없다.
자신은 대단하고 부풀리고 허풍을 쳐대면 도리어 비웃음만 사기 쉽상이다.
스스로에게도, 타인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게 되는 과잉자의식의 소유자들을 고통스럽다.
그래서 고통과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깨달음 등에 관심이 많다.
철학책을 읽고 교회를 가고 절을 가고 수행을 하고 명상을 한다.
그러면서 모든 고통의 원인이 본인의 자아와 이기심이 너무 세다는 것을 알게된다.
타인에게 인정받는 것에 대한 집착이 문제라는 것을 파악한다.
또 이런 것이 무의식의 골수까지 박혀있는 것도 알게된다.
문제가 명확해지면 해결책이 나온다.
고통의 원인이 자의식 과잉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그런 상태로 빠질 때마다 그것을 인식하고 빠져나오는 훈련을 해야 한다.
단지 그것을 버리는 연습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수행자들은 안간힘 쓰는게 습관이 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남들에게 인정받으려는 것도 생존을 위한 안간힘에서 나오는 에너지이다.
그 몸부림의 습관이 무의식을 다시 완벽하게 개조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런데 아이러니는 노력, 발버둥, 안간힘이 자아를 강하게 한다는 사실이다.
고통을 없앨려고 안간힘을 쓰면, 자아가 더 세지는 역효과를 낳는다.
자아가 그렇게 세지 않은 사람들은 고통이 적다.
그래서 적당한 고통은, '그러려니' 하면서 지낸다. 그렇게 잘 살다 잘 간다.
그런데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은 조그마한 고통도 없애겠다고 또 안간힘을 쓴다.
안간힘과 몸부림도 관성을 가진 큰 습관이다.
이 사람들은 자기 고집이 세고 주장이 강하다.
문제는 남들은 이것을 다 아는데 본인들만 모른다.
열심히 노력하고 있으니 옆에서 이야기 해주기가 그렇다.
이 수행자들은 자신의 이마에 붙어있는 '수준낮은 속물' 이라는 딱지는 결코 볼 수가 없다.
'당신 이마에 수준낮은 속물이라고 적혀있는데요' 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근데 그랬다가는 시비만 붙을 것 같아서 모른척하고 지나간다.
그러니 일반인들과는 자연스럽게 멀어진다.
비슷한 성향의 수행자들끼리 모여 어울리게 된다.
그런 사람들이 모인 나름의 '도반' 모임에서는, 상대방 이마에 적힌 딱지를 지적하며 논다.
'살림살이'를 보여달라느니, 증명해 달라니 하며
실체도 없는 탁상공론을 끊임없이 되풀이하며 안심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진전이 없다. 근본적인 고통이 해결이 되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는 절대 호승심과 경쟁의 DNA 속 습관을 뛰어넘지 못한다.
그러면서 일반인들을 돼지 취급하고, 당신은 왜 사는지도 모르는 돼지같은 놈이라고 툭툭 건드린다.
사실은 자신을 드러내고 자랑하고 인정받고 싶은 것이다.
도리어 일반인 중에 경쟁과 돈에 대한 욕망의 유전자를 인간은 결코 뛰어넘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현명한 사람들이 더 많다.
그것을 인정하는 그들은 도리어 적당한 선에서 멈출 줄 안다.
절제하는 성숙한 부자들을 보라. 얼마나 아름다운가.
일반인들은 잘 살고 있다. 과잉 자의식에 취하지도 않으며, 적당한 선에서 포기할 줄 안다.
이길려는 마음도 별로 없고 인정받으려는 생각도 없으며, 적당한 선에서 협력하고, 경쟁하며 웃다가 울다가 잘 살다 간다.
요청하지도 않는데, 삶과 인생의 의미, 고통의 의미, 무의식의 존재에 대하여 가르칠려는 습성이 내게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스스로 그것을 인정하기 힘들었다. 다른 사람들도 다 나같이 이런 것에 관심이 많은 줄 알고 있었다.
이것은 남을 돕고 싶어하는 나의 착한 마음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것은 무의식의 교묘한 거짓말이었다.
돈 모으기와 무리내에서의 경쟁 그리고 승리
그렇게 하고 싶었지만, 남보다 더 잘해낼 자신은 없었다.
그래서 아예 경기장에 들어가지 않기 위한 적절한 변명, 그럴싸한 방어기제가 필요했다.
마치 모래속에 머리를 처박은 타조와 같은 행동이었다.
인정받고는 싶은데 자신이 없어, 도망가려는 어린아이의 무의식, 회피의 방어기제였다.
일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에 관심이 없다. 뭔 돈 안되는 쓰잘데 없는 개소리? 이런 반응일 것이다.
그래서 굳이 이 글을 여기까지 읽지 않고 나갔을 것이다.
당신이 이 글을 여기까지 읽고 있다면 당신도 이러한 과잉 자의식에 사로잡혀 있을지도 모른다.
만약 당신이 충동과 고통, 괴로움이 많다면 당신도 잘못 양육되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누군가 묻지 않았는데, 오지랖 넓게 돕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생각해 볼 일이다.
이 사람은 잘 살고 있다. 왜 건들려고 하는가?
개인이 경험하는 세계는 오직 그 자신에게만 통하는 이야기이다.
나처럼 과잉 자아를 만들어 인생을 괴로움과 고통으로 몰아넣으려고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