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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행복의 기원 : 생존과 번식 , 행복은 진화의 산물이다 [서은국]

동트는새벽 2022. 2. 16. 08:28

당신이 알고 있던 그것은 그것은 행복이 아니다.
납득하기 어려운 사실이지만 , 우리 뇌는 심리적 고통과 신체적 고통을 똑같이 받아들인다
몸과 마음의 고통은 인간의 ‘생존 ’을 위협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
생존 , 그리고 번식 . 모든 생명체의 존재 이유이자 목적이다 .
인간 역시 이 명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 .
그러나 인간은 단지 생존하기 위해 삶을 영위하는 것이 아니다 .
이별의 고통을 알지만 다시 사랑에 빠 지는 것처럼 , 아픔을 감수하고서라도 얻고 싶은 무언가를 위해 인생은 계속된다 .
꿈을 위해 , 사랑을 위해, 결국 행복을 위해 우리는 살아간다 .
행복은 모든 사람이 바라는 삶의 최종 목표다 .

행복은 생각인가?

삶은 갈등의 연속이다 .
이 갈등은 인간의 양면적 모습 사이의 끝없는 줄다리기다 . 무의식적이고 동물적인 우리의 ‘본능 ’이 의식적이고 합리적이고자 하는 문명인의 ‘이성 ’과 하루에도 몇 번씩 , 평생 동안 충돌 한다 .
인간의 진짜 모습은 무엇일까 ? 철학자들이 수천 년간 펼친 이 논쟁에 끼어들고 싶지는 않다 .
양면적 모습을 언급하는 이유는 심리학이라는 학문, 특히 지금까지의 행복 연구는 인간의 ‘의식 ’ 수준에서 진행되는 상당히 합리적인 모습에만 너무 몰두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
이런 관점으로 그려진 행복의 청사진 에는 정작 결정적인 것들이 빠져 있다 .
행복은 본질적으로 감정의 경험인데 , 마치 머리에서 만들어내는 일종의 생각 혹은 가치라는 착각이 들게 한다 .
불행한 사람은 긍정의 가치를 모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다 .
행복은 본질적으로 ‘생각 ’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생각을 고치라고 조언하고 있다 .
이런 식의 행복 지침서를 읽고 행 복해지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

왜 생각을 바꾸는 것만으로는 행복해지기 어려운 것일까 ?

결론부터 말하지만 이렇다 .
행복은 사람 안에서 만들어지는 복잡한 경험이고 , 생각은 그의 특성 중 아주 작은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뜻대로 쉽게 바뀌지도 않지만, 변한다고 해도 그것은 여전히 전체의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
우리가 용돈을 받고 즐거워할 때 느끼는 행복 역시 돈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
돈이라는 자극이 뇌의 특정 부위들을 흥분시켜 ‘좋다 ’는 일시적 경험을 합성해 내는 것이다 것이다.
어쨌든 행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경험이 왜, 언제 뇌에서 발생하는가를 알아야 한다 .
그래서 이 뇌의 주인에 대한 깊은 이해가 이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
의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 .
분명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특성이다 .
숙고할 수 있기에 어제의 경험을 통해 뭔가를 배우고 , 내일을 준비하고 , 이런 책도 사서 읽어본다 .
그러나 무엇을 의식적으로 생각 하는 능력이 어떤 생명체의 생존에 꼭 필요한 것일까 ?
우리보다 지구에 훨씬 오래 전부터 살아온 악어 . TV에서 보면 녀석들은 진흙을 뒤집어쓰고 있을 뿐, 도무지 고차원적인 생각을 하는 표정이 아니다 .
인간사회 못지않은 복잡한 위계 구조를 유지하며 , 심지어 곰팡이 종자까지 운영하는 놀라운 개미들 .
그 녀석들도 생각이란 건 하지 않는다 .
즉, 의식적인 생각은 생명 유지의 필요조건이 아니다 .
인간도 마찬가지다 .
호흡 , 소화 , 혈액순환 . 우리의 생명을 유지시키는 거의 모든 생리적 기능들은 자동으로 이루어진다 .
이 책을 읽는 동안 심장이 몇 번 뛰었는지 , 호흡을 몇 차례 했는지 우리는 모른다 .
하지만 분명 심장은 뛰었고 숨을 쉬었다 .
우리의 생명을 꾸려나가는 수많은 기능은 자동으로, 잘 짜인 프 로그램처럼 우리 의식 밖에서 돌아가고 있다 .
요약하자면 의식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이 생존에 절대 필요한 것도 아니고 , 일상의 경험들을 하기 위한 필요조건도 아니다 .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이 ‘생각하는 모습 ’을 인간의 대표적 특성으로 꼽는다 .
가장 큰 이유는 , 사람은 자신의 경험 중 의식적으로 생각하는 부분만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보이는 ’ 부분이 실제보다 많은 일을 하고 있다고 착각한다 .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는 오해를 하면 인간은 그저 ‘생각하는 단백질 덩어리 ’로 착각하며 살게 된다 .
그래서 행복이라는 문제도 생각이라는 아주 좁은 테두리 안에서 논하게 되고 , 결국 행복의 본질을 간파 하지 못하게 된다 .
이성의 역할을 중시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그것이 우리의 동물적 본능을 통제하고 다스리기 때문이다 .
중요한 기능이다 .
이 능력 덕분에 덕분에 먹고 싶어도 참고 , 자고 싶어도 새벽까지 공부하고 , 지금이 아닌 먼 훗날을 위해 산다 .
하지만 이 이성적으로 통제된 행위가 본능적 욕구보다 무조건 좋고 바람직한 것인가 ?
어떤 잣대를 가지고 판단하느냐의 문제다 .
가치가 아닌 생존에 기여하는 정도에 대해 생각해본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 생존에 위협을 느끼면 인간 은 더 동물스러워진다 .
항상 식량난에 시달렸던 인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영양을 몸에 비축하도록 설 계됐다 . 특히 지방이나 당분이 당분이 당분이 있는 음식으로 , 그래서 다이어트를 결심하는 이들에게 초콜릿과 지방은 무서운 유혹이다 . 이 오랜 습성 때문에 현대인은 성인병과 비만에 시달리지만 , 그 버릇 덕분에 지금까지 생존해오고 있다 .

행복에 대한 책에서 왜 이성이나 본능 같은 주제를 굳이 다루느냐고 ? 행복을 소리라고 한다면 , 이 소리를 만드는 악기는 인간의 뇌다 . 이 악기가 언제 , 왜, 무슨 목적으로 소리를 만들어내는지를 알아야 행복에 대한 감을 잡을 수 있다 . 그래서 우선 이 악기의 주인 , 즉 인간에 대한 심층적 파악이 필요하다 . 생각은 그의 모습 중 아주 작은 일부다 .

다윈과 아리스토텔레스 , 그리고 행복

인간의 관점에서는 우주의 모든 것이 이유와 목적이 있어 보인다 . 강물은 바다를 향해 가고 , 봄비는 꽃 을 피우기 위해 내리는 것 같다 . 이처럼 세상만사를 어떤 원인이나 목적, 계획과 결부시켜 생각하는 관점을 철학에서는 ‘목적론 ’이라고 한다 . 자연의 그 어떤 것도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 분명한 이유와 목적을 품고 있다는 생각 . 이 목적론적 사고의 원조가 바로 아리스토텔레스다 .
아리스토텔레스의 인생관 또한 다분히 목적론적이다 . 그에게 삶은 가만히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뭔가를 추구하며 그것을 향해 나가는 과정이다 . 이때 인간이 추구하는 가장 궁극적인 목표를 행복이라고 보았 다. 아침 식사는 출근하기 위해 , 출근은 돈을 벌기 위해, 돈은 결국 행복해지기 위한 것이다 . 인간 행위의 종착지는 결국 행복이라는 것이다 .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기본적인 사실을 냉정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 세상은 그 누군가의 계획과 목적에 의해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 인간은 더 똑똑해지기 위해 살아온 것도 아니다 . 물리적 법칙과 화학 반응들에 의해 발생한 것이 우주고 , 생명이고 , 인간이다 . 그 과정에는 어떤 목적도 이유도 없다 .
인간이 우주의 특별한 존재라는 오만에 지동설이 한 방을 날렸다면 , 여기에 KO 펀치를 날린 것이 다윈의 진화론이다 . 인간이 우주뿐 아니라 지구에서조차 그다지 특별한 존재가 아님을 일깨워준 것이다 . 자연의 법칙을 따라 존재하게 된 하나의 생명체 . 인간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
하지만 다윈의 진화론과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론은 질적인 차이가 있다 . 진화론은 다윈이라는 한 천 재의 개인적 의견이나 견해가 아니다 . 사실이다 . 지질학 , 동물학 , 고고학 , 화석학 , 생물학 , 유전학 , 인류 학, 심리학 …. 학문을 초월해 현재까지 동원된 모든 과학적 방법들이 지속적으로 검증하고 있는 사실이다.
다윈 대 아리스토텔레스 .  중요한 대립이자 갈림길이다 . 행복을 어디에 대입시켜 논하느냐에 논하느냐에 따라 판이하게 다른 결론이 나온다 . 하나는 아리스토텔레스로 대변되는 철학에 바탕을 둔 전통적인 관점이고 , 또
하나는 새롭게 개통된 진화론이라는 코스다 .
진화론 코스에서 보게 되는 행복은 그동안 우리에게 익숙했던  모습과 다르다 . 생존 , 욕정 , 번식과 같은 본능들과 뒤범벅된 매우 원초적인 모습니다 . 행복이 실체에  더 가깝지만 , 여전히 학계에서는 외면 받고 있는 얼굴이다 .
스탠포드 대학에서 심리학 박사학위를  갓 마친 제프리 밀러라는 밀러라는 젊은 친구가 2000 년에 내놓은 『메이 팅 마인드』라는 책. 세퍼드라는 대가 밑에서 공간사고를 전공했던 이 친구는 학위 후 훨씬 묵직한 질 문을 던졌다 . 인간의 마음은 정말 ‘무엇을 하기 위해 ’ 설계되었을까 ?
그 책의 요지는 이렇다 . 창의성이나 도덕성 같은 마음의 산물들은 동물 중 인간만이 가진 특성이며 , 또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인간은 동물과 질적으로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 그러나 밀러에 의하면 인간의 마음 또한 진화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긴 ‘도구 ’일 뿐이다 . 피카소는 캔버스에 , 바흐는 악보에 생을 바쳤지만 , 이런 행위는 동물이 생존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 악보와 사자가 추위를 막아 주지는 못한다 . 그렇다면 창의적인 노력에 담긴 본질적 의미나 목적은 무엇일까 ?
본인조차도 의식하지 못하지만 , 상당 부분은 짝짓기를 위함이다 . 이것이 밀러를 비롯한 최근 진화심리 학자들이 내놓은 파격적인 대답이며, 현재 많은 학자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견해다 . 유전자를  남기기 위 함이다 .
재미있는 남자 . 전 세계 여자들이 꼽는 남자의 매력 포인트 중 하나가 위트다 . 그러나 유머러스한 남편이 생존에 무슨 직접적인 도움이  되겠는가 ? 정신없이 웃느라 굶주린 사자가 나타나도 모를 텐데 . 위트 자체가 생존 필수품은 아니다 . 그러나 위트는 그 사람이 가진 마음의 ‘수준 ’을  나타낸다 . 위트는 창의성 의 표현이며 , 높은 창의성을 가진 사람은 멋진 꼬리를 소유한 ‘인간 공작새 ’가 되는 셈이다 셈이다 셈이다 .
드디어 결정적인 질문을 던질 때가 왔다 . 행복감 또한 마음의 산물이다 . 창의력과 마찬가지로  행복도 생존을 위한 중요한 쓰임새가 있는 것은 아닐까 ? 행복은 삶의 최종 목적이라는 것이 철학자들의 의견이었지만 , 사실은 행복 또한 생존에 필요한 도구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

결국은 사람이다

인간이 경험하는 가장 강렬한 고통과 기쁨은 모두 사람에게서  비롯된다 .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 이별 , 짝사랑 …. 인간을 시름시름 앓게 하는 고통스러운 경험이다  . 하지만 인간이 느끼는 가장 강력한 기쁨 또한 사람을 통해 온다 . 사랑이  싹틀 때, 오랜 이별 뒤의 만남 , 칭찬과 인정 …. 그래서 시대와 문화를 막론하고 인간이 치르는 가장 성대한 의식들은 사람과의 만남 (결혼 , 탄생 ) 혹은 이별 (장례 )을 위함인 것 이다 .
왜 이토록 인간은 서로를  필요로 할까 ? 바로 생존 . 세상에  포식자들이 있는 한, 모든 동물의 생존 확률 은 다른 개체와 함께 있을 때 높아진다 . 시카고 대학의 카시오포 교수팀의 오랜 연구에 의하면 현대인의 가장 총체적인 사망 요인은 요인은 사고나 암이 아니라 외로움이다 .
짝짓기라는 궁극적인 생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타인이 필요하다 . 포유류는 자기 혼자 유전자를 남길 수 없다 . 아무리 사냥을 잘해도 짝짓기 상대가 없는 동물은 지구에서 사라졌다 . 현대 생활은 맹수나 배고픔의 위협으로부터는 비교적 자유롭지만 , 여전히 짝짓기는 절대적인 생존 과제로 과제로 남아 있다 .
약 5만 년 전 호모사피에스 중 아주 작은 무리가 아프리카를 나와 세상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 중앙아 시아를 거쳐 일부는 유럽 쪽으로 쪽으로 쪽으로 , 일부는 시베리아나 호주 쪽으로 . 고고학자들은 아프리카를  나온 이 초기 집단의 크기는 불과 150 명 정도였을 것이라 추정한다  . 이 작은 무리가 무섭게 번성해 불과 몇 만 년 만에 남극에서 북극까지 지구 구석구석을 정복하며 살고 있다 . 몇 만 년의 시간은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찰나에 불과하다 . 이 짧은 시간에 인간이 지구를 정복하게  된 비결은 무엇일까 ?
극도의 사회성 . 하버드 대학의 대학의 대학의 에드워드 윌슨 교수가 최근 저서에서 내린 결론이다 . 지구에서 최고의 생존 성공담을 가진 동물은 개미와 인간이다 . 두 생명체의 공통된 특성은 유별날 정도로 정도로 정도로 사회적이라는 것이다 . 한 개체로서는 그다지 탁월한 능력이 없지만 , 서로 돕고 나누고 이용하는 복잡한 사회적 능력 덕분에 두 종은 지구에서 유례가 없는 성공신화를 썼다 . 그래서 윌슨은 인간의 지구 정복을 ‘사회적 정 복’이라고 표현했다 .
행복을 생각하기에 앞서 ,  행복을 찾는 인간은 누구인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 보이는 것에 현혹되지 말자 . 인간은 동물이다 . 행복에  대해 고민도 해보는 똘똘한 면은 있으나 , 살아가는 궁극적인  이유는 다 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두 가지다 . 생존과 짝짓기 . 인간은 좀 더 세련되고 복잡하게 , 때로는 대의명분을 만들어 자신도 모르게 그 목표들 이룰 뿐이다 .
지난 30 년간 과학적인 연구를 통해 행복에 대해 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 그중 가장 중요하고도 확고 한 결론은 무엇일까 ? 긴 시간 행복을 연구한 사람으로서 고민을 해보았다 . 내 생각에는 생각에는 두 가지다 . 첫째 , 행복은 객관적인 삶의 조건들에 의해 크게 좌우되지 않는다 . 둘째 , 행복의 개인차를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것은 그가 물려받은 유전적 특성 ,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외향성이라는 성격 특질이다 .
두 결론은 수백 편의 논문을 통해 검증된 사실이다 .  결론이지만 , 왜 이런 결과가 결과가 결과가 나타나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설명은 아직도 학계에 부족하다 . 나는 이 적막감을 조금 채우고자 이 책을 쓰게 되었다 .
우선 새로운 안경을 쓰고 행복을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 익숙한 철학의 안경을 벗고 , 진화론적인 렌즈 로 행복 (쾌감 )의 본질을 좀 더 깊게 들여다보게 되었다 . 나의 짧은 결론은 , 행복은 사회적 동물에게 필 요했던 생존 장치라는 것이다 .

행복은 아이스크림이다

행복을 좇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질문이 하나 있다 . 내 인생에  무엇이 있어야 행복할까 ? 저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대부분 돈, 명예 , 건강 등 몇 개의 범주 안에 답이 있다고 믿는다 . 그래서 자신의 인생창고 에 이 행복곡물들을 많이 채우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산다 . 주식에 비유한다면 돈과 같은 삶의 조건들이 가장 확실한 행복이윤을  가져다주는 종목이라고 믿는다 . 그래서 많은 것을 거기에 투자한다 . 사실일까 ? 결국 행복은 무엇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차이일까 ? 행복에 대해 가장 흔히 하는 이 생각은 동시에 가장 틀린 생각이기도 하다 .
인생의 여러 조건들 , 이를테면 이를테면  돈, 건강 , 종교 , 학력 , 지능 , 성별 , 나이 등을 다 고려해도 고려해도 고려해도 고려해도 행복의 개인차 중 약 10~1510~1510~1510~1510~15% 정도밖에 예측하지 예측하지 예측하지 예측하지 못한다 . 몇 해 전 한국심리학회에서 체계적으로 조사한 한국인의 행복에 대한 결론도 이와 비슷하다 비슷하다 비슷하다 비슷하다 . 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불행한 불행한 사람이 차이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차이 가 아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구하고 불구하고 불구하고 행복의 10% 와 관련된 이 조건들을 얻기 위해 인생 90% 의 시간과 에너 지를 투자하며 사는 사람들이 많다 . 특히 돈을 벌기 위해 .
국가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 기본적인 의식주 문제가 해결되면 해결되면 해결되면 해결되면 국가의 행복과 경제 수준은 서로 손을 놓아버린다 . 국가 간 행복수치와 행복수치와 행복수치와 행복수치와 행복수치와 GDP 는 분명히 관련이 있지만 , 이것은 기본적인 의식주조차 의식주조차 의식주조차 의식주조차 의식주조차 해결 못하 는 극빈의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국가들이 국가들이 국가들이 자료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 이런 최빈국들을 제외하면 얘기는 아주 달라진다 .
부유해질수록 돈으로 행복을 사는 것은 점점 어려워진다 . 덴마크 , 스웨덴 , 노르웨이 같은 스칸디나비아 스칸디나비아 스칸디나비아 스칸디나비아 스칸디나비아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행복수치는 특히 높다 . 흔히 그들의 높은 소득과 사회복지 시스템에서 오는 결과라고 생각하 지만 오해다 . 일본이 핀란드보다 핀란드보다 핀란드보다 핀란드보다 핀란드보다 국민소득은 높지만 행복 수치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낮다 .
돈과 행복에 대한 가장 유명한 유명한 유명한 연구는 미국 일리노이 주에서 주에서 주에서 지금의 화폐 가치로 약 100 억 원의 상금 을 받았던 복권당첨자들에 대한 연구다 . 복권 당첨 1년 뒤, 21, 21, 21, 21명의 당첨자들과 주변 이웃의 이웃의 이웃의 행복감을 비교했더니 놀랍게도 별 차이가 차이가 차이가 없었다 . 왜 그럴까 ?
우선 감정이라는 것은 어떤 자극에도 지속적인 반응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 복권 당첨 , 새 집, 안정환 안정환 안정환 골. 짜릿하지만 그 어떤 대단한 대단한 대단한 일도 지속적인 즐거움을 주지는 못한다 . 인간은 새로운 새로운 새로운 것에 놀랍도록 놀랍도록 놀랍도록 놀랍도록 빨리 적응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때문이다 때문이다 때문이다 . 그 덕분에 좌절과 시련을 시련을 시련을 겪고도 다시 일어서지만 , 기쁨도 시간에 의해 퇴색된다 . 이런 빠른 적응 과정 때문에 비교적 최근의 최근의 최근의 일들만이 현재의 행복에 영향을 준다 .
감정의 또 다른 특성은 상대적이라는 상대적이라는 상대적이라는 상대적이라는 상대적이라는 상대적이라는 점이다 . 극단적인 경험을 한 번 겪으면 , 감정이 반응하는 기준선 이 변해 그 후 어지간한 일에는 일에는 일에는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 그렇기 때문에 복권 당첨 같은 일확천 금의 경험은 장기적인 행복의 관점에서 보면 저주가 될 수도 있다 . 실제로 복권 연구에서 보면 , 복권에 당첨된 자들의 행복더듬이는 둔해진다 . 복권 당첨 후 그들은 그들은 그들은 TV TV TV 시청 , 쇼핑 , 친구들과의 친구들과의 친구들과의 친구들과의 친구들과의 식사 같은 일 상의 작은 즐거움에서 이전 같은 기쁨을 더 이상 느끼지 못했다 . 큰 자극의 후유증이다 후유증이다 후유증이다 후유증이다 후유증이다 .
그래서 성공하면 당연히 행복해지리라는 행복해지리라는 행복해지리라는 행복해지리라는 행복해지리라는 행복해지리라는 행복해지리라는 기대를 하지만 , 실상 큰 행복에 변화가 없다는 없다는 없다는 사실은 살면서 깨닫게 된다 . 그제야 당황한다 당황한다 당황한다 당황한다 . 축하 잔치의 짧은 여흥만을 여흥만을 여흥만을 여흥만을 생각했지 , 잔치 뒤의 긴 시간에 대해서는 제대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때문이다 때문이다 때문이다 . . .
인생은 유한하다 . 제한된 시간과 시간과 시간과 에너지를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가 결국 인생사다 . 사람들은 사람들은 사람들은 사람들은 상당 부분 을 부와 성공 같은 삶의 좋은 조건들을 갖추기 위해 쓴다 . 이런 것을 소유해야 행복이 가능하리란 강한 믿음 때문에 .
하지만 여기서 기대만큼의 행복 결실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 수십 년 연구의 결론이고 , 이 현상을 일 으키는 주범으로 ‘적응 ’이라는 녀석이 자목되었다 . 하지만 결정적인 질문이 여전히 남아 있다. 적응이라 는 범인은 잡았는데 , 그의 정확한 정확한 정확한 범행 동기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
우리가 느끼는 기쁨과 즐거움은 왜 그토록 빨리 소멸될까 ? 꿈꾸던 대학에 입학해도 , 소울메이트라고
확신했던 그와 결혼을 해도 , 왜 처음의 흥분과 떨림은 지속되지 지속되지 지속되지 지속되지 못할까 ? 적응이라는 현상에 대한 기록 은 많지만 , 이에 대한 속 시원한 시원한 시원한 설명은 아직도 부족하다 .
적응이란 간단히 말하면 , 어떤 일을 통해 느끼는 즐거움이 즐거움이 즐거움이 즐거움이 시간이 갈수록 줄어드는 현상이다 . 행복이라 는 좁은 관점에서 보면 야속한 야속한 야속한 일이다 . 수년 동안 몸과 약간의 영혼까지 팔아서 얻은 승진이 주는 즐거 움과 불과 며칠이다 . 그래서 ‘쾌락의 쳇바퀴 ’ 라는 표현이 오래 전부터 학계에서 쓰여왔다 쓰여왔다 쓰여왔다 쓰여왔다 .
쾌락은 생존을 위해 설계된 경험이고 , 그것이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본래 값으로 되돌아가는 초기화 가 반드시 필요하다 . 이것이 적응이라는 현상이 일어나는 생물학적 이유다 . 그리고 수십 년의 연구에서 좋은 조건을 많이 가진 사람들이 장기적으로 훨씬 행복하다는 증거를 찾지 못한 원인이 기도 하다 . 아무 리 대단한 조건을 갖게 되어도 되어도 되어도 , 여기에 딸려 왔던 행복감은 행복감은 행복감은 행복감은 생존을 위해 곧 초기화돼버리기 초기화돼버리기 초기화돼버리기 초기화돼버리기 초기화돼버리기 초기화돼버리기 초기화돼버리기 때문이다 .
그래서 행복은 ‘한 방’으로 해결되는 해결되는 해결되는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 모든 쾌락은 쾌락은 쾌락은 곧 소멸되기 때문에 , 한 번의 커다란 기 쁨보다 작은 기쁨을 여러 번 느끼는 것이 절대적이다 . 유학 시절 , 지도 교수가 쓴 논문을 논문을 논문을 읽은 적이 있 다. 제목은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강도가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 나는 이것이 이것이 이것이 행복의 가장 중요한 진리를 진리를 진리를 담은 문장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 큰 기쁨이 기쁨이 기쁨이 아니라 여러 번의 기쁨이 기쁨이 기쁨이 중요하다 . 객관적인 삶의 조건들은 성취하 성취하 성취하 는 순간 기쁨이 있어도 , 그 후 소소한 즐거움을 지속적으로 얻을 수 없다는 치명적인 한계가 한계가 한계가 있다 .
결국 행복은 아이스크림과 비슷하다는 과학적 결론이 나온다 . 아이스크림은 입을 잠시 즐겁게 하지만 반드시 녹는다 . 내 손 안의 아이스크림만큼은 녹지 않을 것이라는 환상 , 행복해지기 위해 인생의 거창 한 것들을 좇는 이유다 . 하지만 하지만 행복 공화국에는 냉장고라는 것이 없다 . 남은 옵션은 하나다 . 모든 것 은 녹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받아들이고 받아들이고 받아들이고 받아들이고 , 자주 여러 번 아이스크림을 아이스크림을 아이스크림을 아이스크림을 아이스크림을 아이스크림을 맛보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