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로잡힘에서 빠져나오는 미묘한 마음작용
사로잡힘에서 빠져나오는것은 정신의 미묘한 작용이다.
어떤 특정한 생각을 할때, 자아를 납득시킬 수도 있다.
자아가 고집을 부릴때 그 힘을 꺾는 단순하며 강한 생각이 필요하다. 물론 그것은 사람별로 다 다르다. 자신에 맞는
단순한 주문을 찾아내야 한다.
화가 날때, 미울 때, 자책할 때, 불안할 때, 두려울 때, 질투가 날때.. 자신에게 나타나는 감정의 원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카르마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빠르게 그 감정에서 빠져나와야 이해도 빨라진다.
요즈음에 이런 저런 시도를 해 보고 있다. 감정의 무상함을 단박에 느끼게 하는 표현. 그것을 보는 순간 아 또 내가 사로잡혔구나를 단박에 환기시키는 표현.
다음의 표현이 요즈음 나에게 잘맞는 표현이다.
버선은 다 그냥 버선인데 돌아가신 어머니가 신던 버선은 어머니로 투사되서 보인다. 그래서 눈물이 난다.
버선은 버선일 뿐이다. 버선을 단지 버선으로 본다. 그러면 집착이 사라진다.
사람이 맘에 안든다. 사람을 다 그런 저런 마음을 갖게된 이유가 있는 그저 사람으로 본다. 그러면 미움이 사라진다.
나도 이런 저런 이유로 이렇게 된 그저 하나의 사람으로 본다. 그러면 자책이 사라진다.
나의 이런 행동도 감정도 느낌도 생각도 행동도 진화에 의해 생성된 시스템이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는 것일 뿐이다. 이 시스템도 당연히 시간이 지나면 소멸될 것이다. 그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을 우리는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부른다. 내가 지혜를 얻어서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의 이치를 받아들이고 순응할 때 우리는 단지 그를 지혜롭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뿐이다. 지혜를 얻으려 하는자는 결코 지혜로와질 수 없다.
얻는 것이라든지, 얻으려 한다는 것의 무상함을 아는 사람이 지혜로운 자이기 깨문이다.
미래에 대한 예측하고 대응하려는 시뮬레이션도 하나의 기능일뿐이며 생리작용일뿐이다.
그것을 단지 생리작용으로 볼 수 있을때 불안은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