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이 깨달은 것
업이 있다는 것을 깨달으셨다. 그것이 무의식이다.
즉 무의식의 존재를 깨달으셨다.
그리고 그 무의식의 형성메카니즘을 깨달으셨다.
그 무의식은 형성메카니즘은 다음과 같다.
처음에는 타의에 의해, 그리고 점차 자의에 의해, 그리고 서로간의 소통을 위한 수단인 언어를 통해 잘못된 개념이 점점 강화된다. 이것이 무의식의 시작이다. 무의식은 잘못된 개념의 덩어리, 잘못된 개념에 대한 중독, 집착 현상이다.
'일시적으로 존재하는 현상(무상)이, 영원한 것으로(비아) 잘못된 개념이 형성된다.
절대적이라고 착각하는 이 개념은 점점 확고해지고 단단해지며 신념이 생긴다. 이 신념에 중독된 현상이 무의식라는 것을 간파하셨다.
그리고 사람들이 집착과 회피를 반복하며 점점 더 개념의 중독속으로 빠져들며,
이 개념의 절대성을 믿으며 그 절대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집착하게 된다.
습관의 노예가 된 자신에 대한 혐오와, 그 자기혐오를 잊기 위해 다시 습관으로 더 몰입하는
괴로움의 메커니즘을 보셨다.
또한 이러한 인식과 개념, 집착과 회피, 괴로움의 끝없는 악순환이 생명의 본질적 존재방식이라는 것을 깨달으셨다.
그래서 인생은 고통이라는 것을 깨달으셨다.
명확하게 문제를 파악했으므로, 이것을 없애는 방법(연기, 중도의 원리)도 깨달으셨다.
연기를 보아라(어떤것에서 마음이 형성되었는지를 살펴라. 네가 만난 형색, 머리를 스쳐가는 한 생각이 너를 사로잡았다. 너는 거기에 사로잡혀 다시 중독에 빠져들고 있다. )
양 극단의 견해에 빠지지 말고, 중도를 실천하라
(좋음과 싫음, 집착과 회피, (특정시공간에서만) 존재 VS (시공간 전체에 걸쳐서는) 비존재)
연기 중도를 좀 더 체계적으로,
사성제
팔정도
신수심법의 사념처 수행
으로 설명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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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소통을 위해 개념화를 하는데, 이를 대표적인 특징으로 상징화해 버린다.
(특정시간, 특정공간에 나타나는 가변적 현상임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명확히 하지 않음으로써, 시공간 전체에 걸쳐 존재하는 듯하게)
또한 모든 생명체는 이렇게 형성된 개념에 어떤 형태든 생존에 '유리' 혹은 '불리' 의 범주화를 한다.
예를 들면 단순한 단세포 생명체는 '빛' 을 인식하고 이 빛에 대해 '생존에 유리함' 이라는 개념을 갖고 빛을 쫒는다.
이와 유사하게 진화된 생명체에서 인식된 어떤 현상은 '좋은 느낌' '싫은 느낌'으로 개념화되고 집착과 회피의 행동을 낳는다.
이 행동은 신경세포내에서 강화된 피드백을 통해 좋은 느낌은 좀 더 좋게, 싫은 느낌은 더욱 싫게 강화된다.
이것이 중독이다. 점점 커진 느낌에 대해 우리는 더욱 집착하게 된다.
무한대로 좋아질 수는 없으므로, 언젠가는 우리는 좋은 느낌을 느낄수 없게 되고 그러면 반작용으로 분노하게 된다.
이렇게 좋은느낌 찾아, 싫은느낌 피하느라 바둥바둥대는게 우리의 인생놀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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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무의식은 공업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구성원들의 정신에 퍼져 공유되는 사상들이 공업이라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괴로움을 유발하는 사상들... 공산주의, 자본주의 같은 것도 공업이라 할 수 있다.
변화를 예민하게 느끼는 훈련을 하면 이것을 찾아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