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 정체를 알고 현명하게 다스리기
화는 누구나 겪는 감정이다. 누구나 화가 났을 때 안색이 변하거나 가슴이 답답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화를 무조건
'안 좋은 것'이라고 여기기도 하는데, 사실 화 자체는 좋고 나쁨이 없다. 다만 화가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 화를 어떻게 표현하는지에 따라 좋은 결과 혹은 안 좋은 결과가 있을 뿐이다. 예를 들어 모르는 사람이 자신의 아이를 별 이유 없이 세게 밀쳤다고 상상해 보자. 일반적인 부모라면 그 상황을 목격한 순간 놀라고 화가 난다. 그 화는 더 이상 그 사람이 아이를 해코지하지 못하도록 보호
하게 만든다. 이럴 때의 화는 위협적인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취하게 하고, 문제해결을 위해 적극적이고 단호하게 행동하도록 격려
하는 건강한 역할을 한다. 불의에 맞서 세상을 바꾼 업적도 이러한 감정에서 출발하기도 한다. 반면 안 좋은 경우는 첫째 화가 잘 누그러지지 않아 마음에 오래 품게 되는 경우다. 이럴 때는 화를 곱씹다가 정작 다른 중요한 일에
집중을 못 하거나, 어떤 경우 소화가 안 되거나 두통이 생기기도 해 업무수행에 방해가 된다. 두 번째는 화를 어떻게 표현하느냐의
문제다. 특히 조직 안에서 자기감정을 잘 다스리지 못해 버럭 화를 내고 거칠게 표현하는 사람이 있거나, 걸핏하면 모욕감, 불쾌감을 주는 언행을 일삼는 사람이 있다면 조직 분위기나 조직문화는 경직될 수밖에 없다. 긴장감이 높고 경직된 조직문화가 업무능률을
낮추고 성과를 저해하며 궁극적으로 생산성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이제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후자와 같은 결과를
막기 위해 어떻게 똑똑하게 화를 다스리면 좋을까?
내 안의 '화' 들여다 보기 불안이나 우울 같은 감정도 마찬가지지만, 화라는 감정을 잘 다스리기 위해서는 먼저 그 정체를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감정의 정체를 잘 파악하고 이해하게 되면 마음이 한결 정리될 뿐 아니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한다. 대개 화는 그 감정
이면에 먼저 자리하는 일차감정(Primary emotion)이 있다. 보통은 그 일차감정을 직시하는 것이 불편하기 때문에, 주로 가장 쉬운 대응 방법인 회피, 혹은 '화'로 포장해 버리는 방식을 취하게 된다. 예를 들면, 회의 시간 사람들 앞에서 면박을 당했을 때의 수치심,
누군가를 보호해 주지 못했거나 팀을 책임지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 성과나 승진에 대한 불안과 같은 감정들이 화보다 먼저 일어
나는 일차감정에 해당한다.
그리고 화는 그 감정과 밀접하게 연결된 생각이 뒤따른다. 예를 들어, A라는 프로젝트에 노력을 많이 기울였지만 성과에 대한 칭찬
이나 보상은 다른 사람이 다 받는 상황을 가정해 보자. 물론 섭섭함과 억울함이 잠시 찾아올 수 있다. '그래도 무언가 많이 배웠고
성장할 수 있던' 경험으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해석하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성취감을 맛보거나 다음에 비슷한 일을 더 유능하게 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반면 똑같은 경험을 가지고 '난 이용만 당했어, 진짜 억울하고 부당한 일이야'라며 부정적으로 해석하거나, '저 사람이 내 노력을 모른 척 하지만 않았어도'라고 남 탓을 한다면 누구나 원통해질 수밖에 없다. 이렇듯 경험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감정경험도 달라진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신체 변화가 발생하는데, 후자의 경우 흔히 가슴 두근거림, 빨라지는 호흡, 얼굴 달아오름과 같은 자율 신경계 반응이 동반된다. 이는 불안을 느낄 때의 신체 반응과 유사하다. 늦은 밤 인적이 드문 외진 골목길을 걷다가 강도를 만나면 심장이
뛰고 호흡이 거칠어지고 근육이 긴장한다. 우리 몸이 위협 상황에서 싸우거나 도망칠 수 있는 방어 태세를 취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와 유사하게 화로 유발된 신체 반응 후에는 자연스럽게 그다음 단계인 행동(Acting-out)화 하고 싶은 충동으로 이어진다. 화가
증폭되면 그 강한 에너지 때문에 불쾌해지고, 이를 방출하고자 하는 자연스러운 욕구가 생기는 것이다. 짧은 순간이지만 당장 어떤
행동을 취하고 싶고, 어떻게든 표현할 수 있는 반응을 탐색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면 결국 분노 행동으로 이어진다. 보통 고함치기, 자리 박차고 나가기, 주먹으로 물건 치기 같은 극적인 행동, 즉 속된 말로
'뚜껑이 열리는 상태'를 떠올리기 쉽지만, 사실 불쾌한 표정 짓기, 빈정거리기, 한숨과 같은 미묘한 행동들도 분노와 연결된 행동에
해당한다. 물론 후자 정도의 표현으로 큰 문제가 생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전자처럼 공격적으로 보이는 행동들, 홧김에 충동적으로 내린 결정들이 문제 되는 경우가 더 많다.
내 안의 '화' 다스리기 화가 날 때는 다른 그 어떤 행동보다 우선은 그 자리를 피하는 게 가장 좋다. 감정에 휩싸이면 이성의 뇌는 마비된다. 순간적인 화로 인해 결과를 예상할 틈도 없이 섣부른 행동을 하게 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그 어떤 방법도 잘 떠오르지 않고,
해보려고 해도 잘 될 리 만무하다. 다행히 의학적으로는 통상 30초, 길어야 3분의 시간이 지나면 감정에 휩싸여 마비됐던 이성의
뇌가 다시 작동한다고 한다.
어느 정도 강하게 올라왔던 화가 누그러지면, 첫째 화에 대해 따져 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정말 화가 날 만한 상황이었는지, 무슨 생각 때문에 화가 난 것인지 살펴보는 것이다. 보통 화에 갇혀 있게 되는 것은 '내가 맞다', '내가 옳다'는 판단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저건 부당한 거야', '저건 잘 못 됐어'라며 분개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맞고 상대가 틀리면, 저 사람이 바뀌어야 하는데 이것만큼 어려운 일이 없다. 오히려 가장 빠른 방법은 바꿀 수 없는 상황이나 남을 바꾸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범위에서 자신의 변화를 꾀하는 것이다. 또 다른 경우엔, 해석을 잘 못 해서 화가 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당신 팀이 성과가 가장 낮아'라는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내 실력이 형편없다고 하는구나'라고 자기만의 생각 필터로 바꿔서 해석해 버리는 경우다. 이런 자동적인 해석은 보통 분노
밑에 깔린 일차감정과 연결된 경우가 많다. 이럴 때는 내가 느낀 분노 밑에 깔린 상처나 두려움이 무엇인지 탐색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내가 무엇 때문에 상처를 입었는지, 무엇이 두려운지 알아보면 사실은 상황이나 상대에게 화를 낼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내가 두려운 것이 죄책감, 수치심, 상처, 두려움, 거절, 부적절감 같은 느낌일 수도 있고, 내 명성, 이미지, 남들의 인정, 과거의 실수, 놓쳐버린 기회일 수도 있다. 어쩌면 지위, 돈, 사람을 잃어버리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화 밑에 깔린 일차감정을 찾는 것이 나를 이해하고 다르게 행동하도록 하는 데 무엇보다 중요하다. '안 좋은 평가를 받을까 봐 두려
웠구나', '안 좋은 평가는 나를 가치 없는 사람처럼 느끼게 하는구나'와 같이 정말 내가 두려운 것이 무엇인지 정체를 알면, 그 원인이 밖에 있지 않음을 알게 될 수 있다.
일차감정을 잘 파악했다면 화를 내는 대신 자신에 대한 연민을 베풀어 보자. 필자의 경우, 어릴 적 심하게 열이 나고 아플 때 아스피린 같은 약보다 어머니가 곁에 있어 줄 때 마음이 한결 편해졌던 경험이 있다. 펄펄 끓는 이마에 어머니가 손을 얹어줬을 때 느낌처럼
비슷한 연민을 자신에게 베푸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지금 이 정도로 충분하다', '이 상황에서 최선의 방법이야, 고생했어',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분노 밑에 깔린 상처와 화로 힘든 자신을 따뜻하게 토닥이고 위로하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다. 만약 스스로 이러한 위로가 잘 안 된다면, 이런 역할을 대신해줄 주변인을 찾아가는 것도 방법이다. 일차감정까지 진솔하게 나눌 수 있고, 공감해 줄 수 있는 대상이 있다면 찾아가 도움을 구해 보라.
[노동법률 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