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상황에서도 몸안에 긴장이 없고 편안~하다면, 그 상태가 해탈한 상태이다.
해탈을 네이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굴레에서 벗어난 것, 속세의 속박·번뇌를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심경에 이르는 것.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부처님께서는 사람은 단지 색수상행식의 5가지가 다발로 모여있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내가 보기에 그것은 감각기관, 느낌, 생각, 감정, H/W화된 고정관념을 말하는 것 같다.
부처님께서는 이 오온을 명확히 아는 것이 지혜이며, 이 오온의 속박, 굴레에서 벗어나는 길이 해탈이라고 하셨다.
이 오온을 명확히 알기 위해서는, 내 몸안에서 일어나는 오온의 변화, 혹은 오온의 변화의 결과를 관찰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다행히도 이 오온은 차분히 살펴보면 관찰 가능하다. 주로 명상을 통해 관찰할 수 있다.
색: 감각기관들로부터 들어오는 것들을 관찰한다. 형상, 소리,
수: 본능적 느낌으로 표현되는 내 몸안의 내장들이 느끼는 전기감각들의 수준, 위의 뒤틀림, 심장의 붕 떠있음,
전반적으로 상기되어 있으면 불쾌함, 안정되어 있으면 쾌함. 술먹고 나면 위장이 뒤틀리면 후회로 이끌림이 하나의 작용예이다.
상 : 머리속에 떠올리고 있는 생각들을 관찰함. 이것은 앞의 느낌과 링크되어 다시 기억에 저장됨.
행 : 내 안에 형성된 108가지의 감정들을 관찰함. 행동을 촉구하기 위한 심리적 메커니즘, 기전, 기제
식 : 자아, 에고라는 피조된 개념을 관찰함. 접하는 대상별, 떠오르는 생각별로 '이런 대상에는 이런 감정이, 저런 생각에는 저런 감정을 떠올리는 존재'라는 걸 관찰함.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할때, 생각하며 운전할 때, 회사에서 회의를 할때 대상(오감과 생각)을 접하는 순간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느낌이 일어난다. 뱀의 형상을 보면 소름이 돋는 것이 그것이다. 그것은 느낌이다.
이 느낌은 뇌에서 보낸 신호로 근육(내장기관의 뒤틀림, 얼굴표정근육의 뒤틀림, 피부의 곤두섬, 온도의 변화)에 일어나는데 위의 뒤틀림, 심장의 상기, 복부의 온도 변화, 얼굴 근육의 변화, 두피나 팔 피부의 소름 등으로 나타난다.
어떤 생각을 할때 내 몸을 보면 뭔가 불편할 때가 있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서 그렇지 사실 많은 시간 우리 몸의 근육들은 긴장되어 있다. 이 근육들의 긴장상태가 뇌가 대상에 보이는 반사작용, 접근과 회피의 느낌이다.
그것을 단지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차분히 내 몸안을 분리해서 살펴보면 그것을 알 수 있다.
이 느낌과 내/외부 상황을 연계하여 뇌는 추측을 한다. 이 추측의 결과가 감정이다.
기쁨, 혐오, 분노, 미움, 불안, 질투, 시기, 이러한 감정을 통하여 개체의 행동을 촉구하게 된다.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108가지의 번뇌이다. 이 감정들은 어떤 행동을 요구한다. 근본적으로는 접근과 회피의 행동이지만, 좀 더 장기적으로 복잡한 행동을 하도록 유도한다.
이러한 감정은 음식물 획득, 짝짓기, 지위 및 서열 높히기, 협력, 동맹에 유리한 개체가 되기 위해, 과거 500만년동안의 인간진화의 과정에서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최근 1만년 동안 환경을 많이 바뀌었고, 우리 몸속에 남아있는 기존의 심리 메커니즘은 도움이 되지 않는 과도기적 상황에 우리는 처해있다. 서열 높히기에 도움이 되지 않는데도, 앞에 끼어든 자동차에 분노하게 되는 것이 그런 예이다.
마지막으로 관찰해야 하는 것이 자아, 혹은 에고이다. 인간 개체는 태어나면서부터 가는 곳이 다르고, 접한 것이 다르고, 다르게 느끼고, 다른 감정에 휩싸여 살아왔다. 즉 모두가 자극에 대하여 다른 반응을 하도록 되어있다.
특히 생각은 주요한 자극인데, 사람마다 주로 생각하는 바가 다 다르다.
나는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관찰하는 것이 식에 대한 관찰이다. 나는 주로 어떤 것을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맡고, 감각하며, 어떻게 느끼는가?. 주로 어떤 생각이 잘 일어나는가? 어떤 감정이 주로 일어나고 사로잡히는가? 어느정도 길게 감정에 사로잡혀 있는가? 자신의 상황에 대한 예측패턴, 옳다/그르다, 싫다/좋다의 고정관념을 관찰하는 것이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이다. 우리는 타인은 기가 막히게 평가하면서도 정작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은 거의 없다.
이 5가지는 자기가 알아서 잘 굴러간다. 진화가 나에게 본능을 심어줬고, 내가 태어난 환경이 나의 뇌를 다듬어 왔다.
그게 현재 '이 모양 이 꼴'인 나의 모습인 것이다.
이 다섯가지를 잘 관찰하게 되면 텔레비젼이나 유튜브를 맹목적으로 보지 않게 된다.
그것들이 모두 나의 5가지를 조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뉴런들은 복수의 시냅스를 가진다. 한개의 뉴런이 대략 천개에서 만개의 시냅스로 다른 뉴런들과 연결이 되어 있다. 한개의 뉴런에 연결되어 있는 시냅스들 중에서 동시에 ON 되는 시냅스들은 두꺼워진다. 즉 강하게 연결되는 것이다. 혼자만 발화되는 시냅스는 죽는다. 시냅스는 1초에 400번의 온/오프가 가능하다. 1초에 시냅스가 두꺼워지거나 사라지는 것이 400번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것이 뇌의 가소성이다. 지금도 내 뇌안에는 개념들간의 시냅스가 사라지거나 두꺼워지고 있다. 텔레비젼이나 욕망을 자극하는 유튜브들을 보고 있으면 내 뇌안에는 그것과 관련된 시냅스들이 두꺼워지고 그것을 향한 느낌과 감정은 더욱 강화되는 것이다.
그것은 텔레비젼을 보기 전과 후의 내 수상행식을 관찰해 보면 알 수있다. 많이 변해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뭔가 흐리멍텅해져 있고 멍청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테라와다의 청정한 생활을 하는 스님들은 이런 상황을 똥통에 빠진 것과 같은 기분으로 표현한다.
깨끗이 씻었다가 다시 똥통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똥통에 빠지지 않을 수가 없다.
생활을 해야하고 회사를 가야하고 사회생활을 해야한다.
우리가 생활을 하는 것은 이 색수상행식이 계속 변해가는 것이다.
대상과 느낌에 대해서는 우리는 어떻게 해 볼 수가 없다. 케이크를 보고 위가 뒤틀리는 것에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생각과 감정과 에고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볼수가 있다. 이것은 호흡이나 눈깜빡임에 대한 우리의 의지 작용과 비슷하다. 완전히 통제할 수는 없지만 영향을 줄 수는 있다. 가령 호흡이나 눈깜빡임을 완전히 멈출수는 없지만, 잠시 참을 수는 없다.
생각도 마찬가지로 떠오르는 것을 완전히 멈출수는 없지만 주의를 잠시 다른 곳으로 돌릴 수는 있다.
감정이 떠오르는 것을 완전히 조절할 수는 없지만, 초창기에 그것을 알아채고 약화시킬 수는 있다
여러 방법이 있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알아채고 정면으로 그것을 인정하고 기꺼이 감정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에고를 완전히 조절할 수는 없지만, 약화시킬 수는 있다.
에고는 이기적으로 내로남불하려고 할때 출현한다.
이때 감정과 같은 방법으로 다루어준다. 초기에 알아채고 인정한다. 지시에 따를지는 의식한 후 행동한다.
이 과정을 반복해 가다보면, 몸이 점점 편안해 질 것이다.
내 몸안의 근육의 경직들이 해소되고 힘이 빠질 것이다. 물리적으로 힘이 빠지는 것을 말한다.
그러면 내 속의 긴장들도 해소되고 평안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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